[인터뷰] 임지영 변호사 “사법시험·로스쿨 구별없는 법조계 화합 꿈꿔”
상태바
[인터뷰] 임지영 변호사 “사법시험·로스쿨 구별없는 법조계 화합 꿈꿔”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6.08.11 18:59
  • 댓글 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행정심판위, 방통위 두루 거쳐 여성변호사회에
“로스쿨은 법 관련 모든 경험·고민들을 나누는 곳”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사법시험 존치 논란이 한창 뜨거운 때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입장에서 모습을 종종 드러냈던 임지영 변호사.

연수원 출신·로스쿨 출신으로 구분하여 서로를 비방하는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고 전한다.

법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 오랜 기간 법을 가까이 한 그녀 역시 사법시험 응시를 여러 번 한 고시생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두 동생은 모두 연수원 출신의 변호사들이다.

출신을 근거로 대립각을 세워야 할 이유가 없는 그녀는 ‘출신 구별 없이 법조계가 화합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 친절하고 조곤하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법과의 인연, 로스쿨 이야기, 법률가로서의 업무와 포부’까지 청해 들었다.
 

 

▷ 변호사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서울대 법학부를 1996년에 입학했구요, 2002년에 졸업했어요. 2001년 사법시험 1차 합격 후 2004년까지 사시 2차에 네 번 연속 응시했는데 모두 실패해 힘들어 하다가 학부 때 인상 깊게 들었던 행정법 수업의 박정훈 교수님께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배워보고자 석사 과정에 진학했어요. 힘겨웠던 수험생활동안 법학을 지겨워하고 회의적으로 여길 때도 있었는데, 그런 제게 법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심어주고 흥미를 다시 깨우쳐 주신 박 교수님은 제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세요. 2009년 석사 학위를 받기까지 법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또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구요, 그 땐 서울대가 법인화 되기 이전이라 전임조교가 교육공무원 신분이었거든요. 그러던 중 로스쿨이 갑작스레 도입됐고 그 때 박교수님께서 제게 권유를 하셨죠. “이론에 대한 공부가 이루어진 지금 시점에서 실무가로 활동하게 되면 그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며 ‘로스쿨 마치고 다시 박사하러 돌아오라’는 조건으로 저를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2010년 이화여대 로스쿨 2기로 입학했구요. 변호사시험 합격 후 다시 박사과정을 밟아 지금 논문만 남겨놓은 상태에 있어요. 박사과정 다니는 동안 (사)행정법이론실무학회 간사를 맡아 학회 준비와 발간 작업에도 참여했어요. 제 첫 직장은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였어요. 전공인 행정법과 관련 있는 직장이었는데 국민,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구제를 사회시스템적으로 이루어내는 것이 제 오랜 꿈이었던 만큼 보람있게 일을 했죠. 거기서 2년 정도 있다가 대통령 소속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직했고, 국가기관에 있다 보니 송무를 해보고 싶은 생각에 로펌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지금 4번째 직장으로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어요. 법률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영역에서 일해 본 경험이 제게는 큰 자산이에요.

▷ 사법시험 공부를 하다가 로스쿨에 온 케이스신데요, 주변에 그런 경우가 많았나요?

제가 들어간 2기 때는 대략 30% 정도 비율이었던 것 같아요.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온 친구들이 꽤 많구나’라고 느꼈죠. 저는 수험법학을 힘들어했고 그로 인해 법률가의 꿈을 접으려고 했기 때문에 저의 경우 로스쿨이 아니면 법률가가 될 수 없었던 사람이잖아요. 말하자면 로스쿨의 수혜를 입은 입장이랄까요. 능력이 있지만 단지 수험법학이 맞지 않은 것 뿐인 법학도들은 꽤 많아요. 그런 친구들이 로스쿨 통해 꿈을 이어갈 수 있으니 감사하죠.

▷ 사법시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 로스쿨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나요?

일반화 시키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제가 본 경우 양 극단에는 비법학도들이 있었어요. 정말 잘하는 친구들을 봤더니 법학을 처음 접한 비법이고, 따라가지 못해 헤매는 친구들도 보면 법학을 처음 접한 비법이구요. 사법시험 경험과 로스쿨에서의 학업성취도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 같진 않아요. 저의 경우도 ‘공부를 해봤던 입장이니까 조금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잠깐 있었는데 이내 그 생각이 사라지더라구요. 결국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위해서는 법공부를 했었는지와 상관없이 학업 노하우를 터득하는 훈련과 함께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사법시험에서도 성과를 거두었겠다 생각한 순간도 여러번 있었어요. 비법학도들의 성취도가 너무 뛰어나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법학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를 배우려고 노력하기도 했죠.

▷ 사시 존치 논란이 뜨거울 때 로스쿨 입장에서 많은 목소리들을 내셨어요.

저는 사시도 경험했고 로스쿨도 경험한 입장에서 너무도 안타까웠어요. 한쪽의 편견에서 비롯된 감정적 주장들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으니까요.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이뤄내려는 의도가 아니고 인격적으로 흠집을 내려는 시도들은 막아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법조계의 발전을 위해 쓴소리 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서로를 공격하고 비방한다면 법조계 전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게 될 뿐이죠. 저는 제 아래 동생 둘이 연수원 출신 변호사예요. 저희 3남매는 1,2년 차이로 비슷한 시기에 변호사업계에 발을 들였죠. 함께 공부하던 동기, 선후배 등 많은 주변인들도 연수원 출신이구요. 저는 출신이라는 불합리한 잣대로 서로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힘을 합쳐 법조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현장에서는 연수원인지 로스쿨인지 출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능력이 있고 맡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는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법조화합을 이루어 당면한 법조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법률가는 개개인 역량에 따라 개인차가 많이 나는 직업인 만큼 자신이 열정적으로 의지를 갖고 일한다면 출신 상관없이 그것으로 인정받아요. 본인 하기에 달린 거죠.

▷ 로스쿨 진학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저는 2기였기 때문에 정보가 너무 없었어요. 기출도 한 회 뿐이었고 학원 강의나 문제집들도 많지 않았구요. 주어진 자료를 최대한 반복하면서 리트의 경우 문제 유형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두고 공부했어요. 영어는 제가 가려던 이화여대가 기준 점수 이상이면 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기준 점수를 넘길 정도로만 준비했고 학점 역시 아주 높다 이런 수준은 아니었어요.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00학번 이전 세대는 학점을 신경쓰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거든요. 제 학점이 3점 중반대였는데 그렇다고 로스쿨 진학을 생각하기 어려운 학점도 아니었죠. 자소서 등 서류에는 제 사법시험 공부경험과 석사과정에서 공부한 경험들, 그리고 진학 이후의 계획들을 진정성 있게 녹여내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무엇보다 면접이 로스쿨 전형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보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면접’보다 ‘구술시험’이죠. 단순히 이 학생이 어떤 학생인가 훑어보는게 아니고 학생들의 사고력과 표현력, 토론 능력들을 평가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주거든요. 면접관들 앞에 서기 전에 텍스트를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한 후에 들어가서 면접관들과 토론식으로 문답을 주고받아요. 저의 경우 대학입시 면접도 그런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경험한 유형이었어요. 종합적으로 봤을 때 저는 로스쿨 입시를 위해 얼마간 기간을 잡고 준비했다기보다는 그 동안의 제 모든 법 관련 경험들과 공부, 고민들이 집약돼서 평가받았다고 생각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나이에 대한 걱정도 없지는 않았거든요. 30대 중반의 나이인데 괜찮을까 우려하기도 했구요. 면접 때라도 나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거론하시지 않더라구요. 입학했더니 저희 기수 100명 중 저는 세 번째였어요. 동기들이 평균적으로 여덟살 정도 어린 친구들이었고 가장 나이 어린 동기와는 띠동갑이었어요. 어린 분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저는 오히려 감사했죠.

▷ 로스쿨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사법시험 준비를 하면서 오랜 기간 힘들었는데 로스쿨에서의 시간은 정말 너무 좋았어요.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낯을 잘 안 가려서 관계의 어려움 없이 모든 동기들과 즐겁게 어울려 공부했구요. 경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뎌내면서 일종의 동지애나 전우애 같은 유대감도 형성됐던 것 같아요. 로스쿨 3년 동안 수백번의 시험을 봤어요. 중간, 기말 같은 큰 시험 뿐만 아니라 수시로 평가시험을 치르는 과목들도 많거든요. 중간, 기말도 한 과목만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한 학기에 5,6 과목을 듣는데다 방학 프로그램과 마지막 변시까지 생각했을 때 처음 입학해서 겪는 부담감은 그 무게가 상당했죠. 하지만 일년에 한 번 치르는 사법시험이 주는 부담감보다 로스쿨에서 일상화된 시험이 저를 더욱 발전시켰다고 생각해요. 자기 실력의 위치도 자주 점검이 되니까 제 발전 정도를 스스로 가늠하면서 일상을 긴장감있게 공부할 수 있었죠. 자는 시간 빼고는 늘 학교에 있었고 동기들이 대체적으로 하루에 12시간씩은 공부하는 분위기였어요. 공부를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체력관리를 못했던 점인데요. 확실히 어린 친구들에 비해 체력이 달리더라구요. 제 로스쿨 생활 중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학생회 활동을 했던 것이에요. 2학년 때 학생회장을, 3학년 때 학년대표를 했어요. 그 땐 로스쿨이 전혀 자리도 안 잡히고 심지어는 변시 문제 유형이 어떻게 될지, 합격률이 어느 정도일지도 정해지지 않은 때였거든요. 모든 것이 막연하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 버겁지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기우였죠. 제가 다닌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님들은 상당히 학생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셨어요. 학생대표들과 수시로 토론을 해 의견을 듣고 그대로 반영하셨죠. 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과 교수님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것이 제게는 참 의미 깊은 일들이었어요. 이제 로스쿨 학생들이 8기인데요. 제가 논의하고 고민하던 문제들을 해결하여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을 볼 때 상당히 보람을 느끼죠.
 

 

▷ 변호사로서 어떤 사건들을 맡으셨는지 기억에 남는 것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바로 어제 조정이 성립된 사건이 있는데요. ‘코피노’라고 한국 남성이 필리핀 여성과 사이에서 낳고 방치해 버린 아이들을 일컫는 말인데 필리핀 어머니를 대리해 한국 아버지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와 인지청구를 진행하게 됐어요. 어제는 소송으로 가기 전 조정절차에 들어간 것인데 생각보다 아버지가 아이에 대한 부성애를 많이 갖고 있어서 놀랐어요. 아이를 챙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왔지만 그 아이가 건강히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더라구요. 한 시간 정도 이야기 끝에 양육비 지원 등을 받아내고 조정을 잘 마쳤어요. 뿌듯했죠. 또 저희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안양여자소년원과 멘토링 결연을 맺고 있거든요. 국내 유일의 여자 소년원으로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라는 명칭을 갖고 있어요. 학교 선생님들은 법무부 교정직원이죠. 결연을 맺고 한 달에 한번씩 단체로 만나는 시간을 가져요. 죄를 지은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약간은 있는 상태에서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까 처음에는 서먹한 마음도 없지 않았는데, 서로 마음을 나누다 헤어질 때가 될 무렵 가지말라고 우는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뭉클했는지 몰라요. 모든 편견들이 무너져 내리고 ‘그저 꿈많은 한 아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단체 만남 이외에 일대일 결연도 맺거든요. 저와 편지를 주고받는 아이가 소년원에서 직업 훈련의 일환으로 배운 기술들과 공부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변호사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겠다”고 적은 것을 봤을 땐 무한한 감동까지 받았죠. 제가 스스로 더 자신을 가다듬게 되고 어린 친구들로부터 자극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고 있어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건 이야기도 할까요. 언론 보도가 많이 됐던 울산 계모사건이에요. 형사절차는 종료가 됐구요, 학대아동의 친모가 계모와 친부를 상대로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청구해서 인정이 됐죠. 근데 사망한 딸을 아버지가 상속해 친모에게 인정되는 손해배상 금액 중 2분의 1만 일부 인용된 거예요. 사실관계를 보면 아버지는 고의를 가지고 아이를 학대한 것이 아니라 계모의 학대행위를 방조한 경우거든요. 아버지의 죄명이 아동복지법 위반이지 살인죄나 상해치사가 아니에요. 따라서 민법 제1004조 상속결격에 해당되지 않아 상속이 인정되는 것이죠. 저는 이에 대한 항소심 진행과 함께 위헌법률심판도 제청하려 하고 있어요. 아동학대사건에서 상속결격을 인정하지 않는 입법적 불비, 입법적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진행하려 해요.

▷ 법률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제가 법률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를 법학과로 진학할 때였는데요, 그 때부터 사법시험을 공부하던 때까지 구체적인 그림이 없었어요. 막연하게 ‘법률가가 되겠다’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정확히 내가 어떤 활동과 어떤 역할들을 하게 될지, 나의 능력과 지식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구상을 전혀 해볼 수 없었죠. 그래서 더 수험생활이 힘들고 지겹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정확한 정보와 직·간접 경험들을 통해 자신이 법률가로서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명확한 그림을 그려놓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공부하면서 힘들고 지친 때에 붙잡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이 돼주거든요. 로스쿨에 들어와서는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거나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자부심과 자신감, 긍정적인 마음을 잃어버리면 긴 레이스에서 방향을 놓치기 쉽거든요. 얼른 사회에서 다들 좋은 모습으로 만나면 좋겠네요.

▷ 어떤 법률가가 되고 싶은가요.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

판사출신이신 박정훈 교수님이 이론 법학의 매력에 빠져 지금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분이신 것처럼 저도 이론과 실무가 튼튼한 법률가가 되고 싶어요. 어쩌면 이론과 실무는 양날개와 같아서 법조인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일텐데요,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것. 하지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것을 위해 저는 박사 논문 마친 이후에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려 해요. ‘능력 있는’ 법률가가 목표죠. 제가 연차에 비해 여러 직장에서 경험을 쌓게 된 것은 그 동안 제가 필요하다며 불러주는 곳에는 사양 않고 갔기 때문인데요. 앞으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제 능력이 필요하다고 부르는 곳에는 마다않고 가서 저의 역할을 할 생각이에요.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강미정 기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뿌로커 2018-03-07 23:54:53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30732731 [단독]
대한변협 간부 '브로커 수임' 의혹에 직무정지

열등의식에 대하여 2016-10-22 09:15:43
로변 능력 없다고 비난하는 분들은 다들 연수원 출신이시죠? 무능과 열등감의 발로가 안타깝습니다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 2016-09-09 00:44:04
법학과 전공과목만 48학점, 평점평균 3.8, 인생 처음으로 법공 1년 반, 토익 자격증 확보, 사시존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로스쿨출신으로 음서제와도 다르게 볼 수 없는 로스쿨자랑만 늘어놓는 임변호사님 같은 분들 땜에 변호사가 되고싶은 흙수저들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나이가 많고 머니가 없어서 로스쿨은 아예 꿈도 못꾼다. 제발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환경을 유지라도 해주는 노력은 하면 안되는가?

민주국가 2016-09-09 00:29:57
독일도 포기한 로스쿨을 왜 옹호하고 그러시는지,,,일본도 포기하려다가 병존으로 가닥을 잡고 잘 진행하는데,,,한국만 로스쿨을 고집하는지,,,한국은 미국이 아닙니다.

임지영의 동생 2016-09-08 17:22:18
언니... 이 기사 법률저널에 전화해서 좀 내려주면 안 될까? 나 너무 창피하고, 주변 동료들한테 하도 안 좋은 소리 많이 들어서 많이 불편해. 카톡이나 면전에서는 도저히 언니한테 말 못하겠고, 이렇게 남기니깐 법저에 꼭 좀 전화해서 기사 내려줘.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