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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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60)
  • 박준연
  • 승인 2016.12.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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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이메일이라는 거울

많은 회사에서 그렇겠지만 로펌에서도 주된 의사소통 수단은 이메일이다. 로펌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뉴욕타임즈 테스트(The New York Times Test)라는 것을 종종 듣는다. 뉴욕주 변호사시험 합격 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트레이닝에서도, 첫 로펌 근무를 시작할 때 오리엔테이션에서도 뉴욕타임즈 테스트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요컨대 자신이 작성해서 보내는 이메일이 뉴욕타임즈 1면에 그대로 실려도 괜찮을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괜찮다는 판단이 들면 그 메일을 송신하라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소소한 이메일이 뉴욕타임즈에 게재될 일은 없지만 또 반드시 그렇게 단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변호사들은 많은 경우 남이 쓴 이메일을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 내부의 조사에서도, 외부 (정부) 조사에서도 회사 이메일을 비롯한 내부 문서 리뷰는 조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업무의 일환으로 이메일을 리뷰하며 느끼는 것은, 이메일을 보낼 때 그 이메일을 받는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읽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정부나 법원에 대한 문서 제출의 빈도가 높은 미국 금융기관에서는 민감한 이야기가 진행되면 이메일 그만 주고받고 직접, 혹은 전화상으로 이야기하자(LTOL, “Let’s take this offline”)는 표현이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례없는 규모의 회계부정 및 비리로 사베인스 옥슬리법의 제정에 큰 영향을 미친 엔론 직원들의 이메일은 법원, 정부에 제출된 것은 물론이고 개인정보 등의 삭제 후 통채로 인터넷에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특히 문서 제출을 포함한 증거 조사(discovery)가 미국만큼 활발하지 않은 국가의 기업들의 경우에는 미국 정부의 조사나 미국내 소송에 휘말려 이메일을 제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실제로 문서 제출 단계로 들어가게 되면, 미국 절차법상으로는 광범위한 문서 제출 요구를 허용하고 이 요구를 받는 측에서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 요구에 응해 이메일을 비롯한 소송관련 문서를 제출해야 한다.

문서 제출을 위해서는 일단 대리하는 변호사들, 아니면 변호사들이 감독하는 문서 리뷰 팀이 이메일을 리뷰하여 상대방의 요구에 부합하는 이메일을 걸러내게 된다. 이 과정의 많은 부분이 컴퓨터가 대신하지만, 불리한 내용과 유리한 내용을 포함하여 핵심적인 문서는 변호사가 직접 검토하고 소송 전략 수립을 위해 기업의 법무팀은 물론이고 그 이메일을 직접 쓴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어 문면상에 나타나지 않은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이어지는 절차는 증언청취(deposition)이다. 판사의 개입없이 재판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절차이지만, 이때의 증언은 많은 경우 비디오 녹화와 증언록 작성을 통해 재판의 공식 기록으로 이용된다. 증언청취 과정에서는 증인 본인이 작성한 문서나 이메일이 증거로 제시되어 이메일의 문구 하나하나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는지를 생각하면, 주고받은 이메일, 그것도 소송의 대상 기간에 따라서는 5년, 1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전의 이메일에 대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증인의 이메일은 본인의 발언이나 증언과 유사하게, 혹은 보다 중요하게 취급된다. 소송이 시작하기 전 해당 사실관계와 동시간대에 전개된 의사소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한 법률 준수(compliance) 블로그의 필자는 이메일은 쓴 사람의 거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불법을 증명하는 이메일뿐 아니라 부적절한 내용을 담은 이메일이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면서 얼마나 낯뜨거웠는지 하는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컴퓨터를 켜고 모뎀으로 인터넷에 연결을 해서야 비로소 이메일을 보낼 수 있던 시대에서 지금은 손을 뻗어 단말기의 키패드를 통해 금세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급하게 이메일 답장을 하다가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일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는지를 생각하면, 주고받은 이메일, 그것도 소송의 대상 기간에 따라서는 5년, 1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전의 이메일에 대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고받은 이메일은 결국 나에게 귀속된다는 생각을 하면 가끔 오싹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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