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 -포토라인의 정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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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3) -포토라인의 정치미학
  • 강신업
  • 승인 2017.03.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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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2017년 3월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죄와 직권남용 등 13개의 범죄 혐의를 받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포토라인(photo Line)에 섰다.

뭔가 어색하고 굳은 표정으로 포토라인에 선 전직 대통령, 역사적 장면을 찍기 위해 밤을 새워 자리를 지킨 기자들 사이로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자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을 앞 다퉈 보도하려는 듯 뜨거운 열기를 보이는 외신 기자들.

그런데 이 진풍경이 우리에겐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똑같은 일이 벌써 수차례 벌어지며 이미 학습효과가 발생한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하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1995년 11월 포토라인에 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2009년 4월 포토라인에 섰다. 전두환 전 대통령, 1995년 12월 연희동 자택 앞에서 소위 골목성명을 낸 후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가 그날 밤 내란죄 등의 혐의로 검찰수사관에 의해 안양구치소로 압송된 탓에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지는 않았지만 그에겐 이미 연희동 골목이 포토라인이었다.

포토라인! 원래 의미는 신문사나 방송사 기자들이 취재 편의를 위해 접근하지 않기로 합의한 일종의 사진 촬영지역이다. 유명인사에 대한 취재가 과열 경쟁 양상으로 번져서 혹 발행할 수 있는 몸싸움이나 이에 따른 불상사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설정된 취재 경계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에 관한한, 포토라인은 더 이상 공정한 취재를 위한 합의와 배려의 선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징치의 선이자 권력의 본질과 위험에 대한 성찰의 선이 되었다. 편법과 불공정을 배척하는 정의의 선, 기득권자와 국민이 비로소 같아지는 평등의 선, 후세의 권력자를 경계하는 타산지석의 선이라는 의미도 취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서 남기는 말은 언론과 국민의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그 자체로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포토라인에서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말과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는 아주 원론적인 말만을 남겼다. 21시간 30분의 조사를 받고 검찰청 청사를 떠날 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는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진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의미 있는 말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제 박근혜 시대는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보며 이제부터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대권주자들이다. 대권주자들은 “저 일은 내 일이 아니야, 나는 잘 할 수 있어, 나는 정의로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왜 탄핵을 당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섰는지를 마음속에 꼭꼭 되새겨야 한다.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말고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으라는 얘기다.

적어도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어른이 다시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늘의 사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과 검찰수사라는 일련의 과정은 비단 박근혜 개인의 불행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의 불행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뭔가 문제가 있을 땐 이를 숨기지 말고 즉시 공개하고 바로잡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진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눈치를 살피면서 잘못을 변명하기에 급급하면 계속해서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자기변명은 용기를 갖고 자신의 잘못을 공개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적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11월 소위 ‘정윤회 문건 사태’가 터졌을 때 이를 공개 사과하고 비선실세 들의 국정개입을 막는 가시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고 오늘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선 진짜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이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가짜 변명을 했기 때문이다. 2017. 5. 9.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누구든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부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거짓 변명이 아닌 ‘진정한 자기변명’만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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