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세에 알파벳 익힌 야구선수, 사법시험 합격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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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세에 알파벳 익힌 야구선수, 사법시험 합격하기까지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04.13 15:41
  •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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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성적 18등, 연수원 48기 장권수 씨
“야구 꿈 좌절된 후 공부 재미 깨달아”
학원강의 안 듣고 독학 6년 만에 결실
“사시 아니면 법조인 되지 못했을 것”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미네소타 트윈스 박병호, LG 트윈스 이동현, 최근 코치로 새 출발한 KT 고영민 등이 그와 같은 야구부 출신이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동네 야구처럼 한번씩 하다가 본격적으로 속하게 된 제 모교 운동부에서 그런 걸출한 선수들이 배출됐어요. 저도 그 친구들과 같은 꿈을 꾸며 함께 운동하던 야구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0년 동안 운동만 하며 공부란 걸 해 본적 없던 야구선수가 사법시험을 합격해 연수원에 입소했다는 제보를 받고 일산의 사법연수원을 찾았다.

2주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새신랑 장권수 씨를 인터뷰한 그 날에는, 때마침 봄꽃이 절정이라 연분홍 꽃비가 사방에 흩날리고 있었다.

‘야구선수’였다는 말에 막연히 우람한 체구와 다부진 인상만을 예상했던 기자는 오히려 누가 보아도 법조인에 걸맞는 차분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를 보고 내심 놀랐다.

그가 말했다. “어떤 때는 저조차 ‘내가 운동을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할 정도로 많이 변했어요. 야구를 그만둔 지 얼마 안 됐을 땐 의자에 잠시 앉아있는 자체만으로도 갑갑함을 느꼈는데, 공부에 취미를 붙이면서는 하루 종일 책만 보아도 좋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오랜 꿈인 야구 접고서야 뒤늦게 알게 된 공부의 ‘맛’

야구부 소속인 그는 중학교 땐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듣고 오후부터 운동을 했으며, 고등학교 땐 학교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았다.

합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맞아가며 운동했다는 그는 오로지 야구 밖에 몰랐다. 운동부는 수업에서 면제됐기 때문에 다른 것을 공부할 기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알파벳 소문자 p와 q를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고3 때 열린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대학에 가서도 야구를 계속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야구를 접을 것인가. 야구선수로서 운동을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 봤던 저로서는 뼈아픈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키도 생각처럼 더 크질 않고, 부모님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야구의 꿈을 접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야구 특기자로 대학을 진학할 경우, 수능 시험장에는 펜만 들고 가면 됐다. 모든 문제의 답을 같은 번호로 찍으면 당시 400점 만점에 70점~80점 정도의 성적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의 꿈을 접은 장권수 씨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장권수 씨의 부모님은 ‘대학만은 진학하라’고 그를 강권했다.

입시 학원에 등록해서 본격적으로 수능을 준비했다. 모든 게 그에게는 첫 걸음이었다. “남들보다 많이 늦었으니 당연히 많이 뒤쳐져 있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은 컸지만 부모님께서 편하게 공부하라고 다독여 주신 것도 있고 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어요. 스스로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을 가졌죠. 하지만 ‘이렇게 모르니까 남들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만은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공부한 끝에 그는 가톨릭대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대학만 진학하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대학에 가서 ‘공부의 맛’을 알아버렸다.

“‘운동만 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쳐져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사회과학이나 철학 등 일반서적들을 수없이 읽으면서 생긴 의문들을 정리해 놓고, 저자나 관련 전문가들에게 따로 이메일을 보내 질문하고 답변을 받으면서 나름대로 늘 공부를 했죠. 조용히 혼자 심취해서 생각에 잠기고, 내용을 알아가고 깨닫는 것에 자기만족을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간단히 말해 그는 ‘공부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확인차 물었더니 즉답이 돌아왔다. “네, 제가 정말 공부를 좋아합니다.”

끝까지 독학, 그러나 “대세 강사 책의 위력은 인정”

사법시험 공부방법론에 관하여는 ‘천 명이 합격하면 천 개의 공부방법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학원 강의는 필수’라는 전제가 근저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학원 강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 길도 있다’고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없는데, 사법시험 합격에 필요한 어마어마한 공부량을 떠먹여 주는 사람 없이 개인이 혼자서 소화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권수 씨의 생각은 달랐다. ‘강의를 곁들여 수험서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주변의 조언이 그에게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6년 가까이 어렵다고 이야기 되는 많은 일반 서적들을 혼자 읽으며 공부한 덕인 것도 같습니다. 학교에서 처음 형법총론 수업을 들으며 형법 교과서를 읽는데, 친구들은 다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책이 쉽게 읽혔고, 그 내용이 내려다 보여서 다양한 판단과 사고작용을 하며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법학과로 온 이상, 법학도 누구나가 한번쯤 생각해 보는 사법시험 도전을 그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친분을 돈독하게 쌓아왔던 학부 교수님은 그런 그의 고민에 등을 떠밀어주며 꿈을 응원했는데, 다만 한 마디 “신림동식 공부는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보기 드물게 ‘제대로’ 공부하는 제자를 두었는데, 혹여 합격만을 위해 기계적으로 공부하다 공부습관을 그르칠까 염려가 된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시작한 사법시험 1차 공부. 그가 택한 교과서는 헌법 정회철, 민법 송영곤 변호사, 형법 배종대였다. 판례집과 문제집은 최신 것으로 곁들여 봤다.

그렇게 2년을 공부한 끝에 1차를 합격한 그는 2차 시험을 위해서는 헌법 교과서만 바꿨다. 학교 수업 때 봤던 고려대 이준일 교수의 헌법학강의를 택했고, 형사소송법 배종대, 민사소송법 이시윤, 상법 이철송(각 과목 분권된 것 모두), 행정법은 정하중을 봤다.

노골적으로 “얼만큼 노력했는지”를 물어봤다. 크게 높낮이의 변화가 없는 차분한 말소리를 가진 그로서는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힘주어 말했다.

“정말, 정말 많이 공부했어요. 아주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더 했다. “삭발까지 했습니다.”

그 기간 스탑워치로 시간을 재면 10시간 이상씩을 일관적으로 찍었다고 한다. 순수하게 공부할 때만 시간을 재는 스탑워치로 10시간이 나오려면 하루를 온전히 공부에만 바쳐야 한다.

그렇게 투혼을 발휘했기 때문일까. 재시에서 낙방한 그가 경험한 절망의 수렁은 깊이가 너무 깊었다.

“야구할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정말 다 했어요. 그런데 끝내는 포기했던 것처럼, 재시를 마치고 든 생각은 그랬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 했는데 이것까지 안 되다니, 내가 죽을 힘을 다 해 노력한 것은 왜 다 안 될까’라는 생각... 많이 힘들었죠.”

그렇게 사시에 대한 마음을 접고 그는 일단 학교에 복학했다. 학교 수업을 들으며, 지금은 아내로서 곁을 지켜주는 여자친구를 만나 연애도 시작했다.

바닥을 치고 있는 마음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고 이야기하는 것도 싫었던 그는, 여자친구와 교제하는 과정에서 차츰 심리가 회복되어 갔고 다시 미래를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책장에 꽂혀 있는 법서를 한 번씩 펼쳐보며 땀방울이 깃든 공부의 흔적을 더듬을 때면, 공부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밀려오는 것을 떨치기 힘들었다고.

그런 그를 지켜보던 여자친구는 법학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지만, 장권수 씨가 미련을 보이는 모습에 적극적으로 다시 도전해보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렇게 얼마 간의 쉼을 마치고 다시 도전한 사법시험 1차의 벽을 그는 거뜬히 넘었다. 그런 후 그 해 2차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고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일부 과목을 강사 수험서로 바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낙방했지만 성적을 확인한 결과 강사저로 공부한 과목들만 월등히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

“그 때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렇게 득점이 되는구나’라는 어떤 감을 얻게 된거죠. 나머지 과목도 대세라는 강사 책으로 다 바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다음해, 즉 4시 째에 합격을 하게 됐습니다.”

“노력하면 되는 것이 공부...가장 정직하고 공정해”

학창시절 10년을 야구만 한 것이 지금의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물어봤다. 일말의 후회나 아쉬움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예상하면서.

하지만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다른 선수들과 달리 노력으로 실력을 끌어올려야 했던 저는, 운동을 하면서 노력이 주는 소중함을 잘 배웠습니다. 노력을 해서 실력을 올리고, 거기에서 성취감을 얻고. 그런 식으로 보낸 10년 덕에 제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다양한 이력을 가진 법조인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다가 뒤늦게 공부에 파고들어 합격의 결실을 이루어낸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한창 공부해야 할 때인 학창시절에 운동만 하다가 법조인이 되는 것, 아니 그 이전에 공부 자체에 관심과 흥미를 가져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장권수 씨는 그와 비슷한 학창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운동하는 많은 친구들이 공부와는 동떨어져 운동만 하는 생활을 2년 정도 쯤 하면 ‘이미 공부의 길로 돌아가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을 가지는데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느 때가 됐든 절대 늦은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이 진지하게 고민해 봐서 ‘더 이상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때가 온다면 그 때가 언제이든 공부의 길로 들어서기에 늦지 않습니다.”

그는 운동과 공부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했다.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두각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노력으로 따라잡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그는 오히려, 노력만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정도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운동의 영역보다는 공부가 더 ‘노력’에 크게 좌우된다고 봤다. 그래서 ‘공부는 정직하고 공정하다’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한편 그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올해를 끝으로 사법시험은 폐지되고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에 진학해야 하는데, 자신과 같은 과정을 밟은 사람이 로스쿨에 진학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에서다.

“운동 말고 아무런 경력이 없는 제가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저도 재시에 낙방하고 로스쿨 진학의 가능성을 여러 방면으로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당시 제 상황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겠다는 꿈보다도 더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로스쿨에 크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거나 사법시험 존치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로스쿨이라는 제도를 이미 들여온 이상 ‘문제가 있으니 폐지하자’ 이런 것을 생각하지는 않고요. 그것은 우리 기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사법시험이 아니면 법조인을 꿈꿀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 사회에는 존재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인 게 로스쿨만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우회로로 예비시험 등을 생각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를 위해서, 제도적 측면에서요. 하지만 한 개인의 측면에서는, 만일 제 동생이나 후배가 지금 수험생인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로스쿨에 최대한 맞춰볼 생각을 하라고 권할 것 같아요. 개인의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로스쿨을 택하는 것이 좋겠죠.”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공격이나 상처 되지 않길"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 그는 아직 주변 지리도 익숙치 못한 ‘적응기’에 있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지나갔다고. 체육대회 준비에 연이은 회식자리, 야간에는 개인적으로 공부까지 챙기면서.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것을’ 열심히 할 수 있는지 동기들을 보면서 깜짝 놀라고 있어요. 정말 열심히 노는 한편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 또 동기들이 모두 젠틀하면서 예의 바르고, 자신의 삶과 맡은 일에 강한 책임감이 있어요. 무게감이 다르다고 할까요. 어린 친구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죠.”

그에게 연수원 수료 후 생각하고 있는 진로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가 하는 일, 내가 들인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상처 혹은 공격이 되거나 해로운 일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검사나 변호사는 입장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판사직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판사가 바로 되지 못하니 로클럭일텐데요. 그런데 연수원에 들어와 보니 워낙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서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 같네요.”

그는 법조인 롤모델로 지도교수인 김도균 사법연수원 교수를 꼽았다. “제가 가장 닮고 싶은 법조인의 모습입니다”라는 그의 한 마디로 설명은 충분했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어떤 면모를 닮고 싶은지 물었다.

“그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훌륭한 분이 그토록 겸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초심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시곤 합니다. 저 뿐만 아니라 조원 모두가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만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김도균 교수님 같은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장권수 씨 역시, 누군가로부터 ‘닮고 싶은 법조인’으로 이야기 될 날이 그리 멀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강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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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17-04-18 02:02:59
그죠 참 꼬인 애들 많네
사법시험 말하는데 굳이 로스쿨 누구는 상비군 출신이네 어쩌네ㅋㅋㅋ
그거 열등감인 거 아나ㅋㅋ

2017-04-15 22:35:45
치열하게열심히산것같네
그나저나 댓글에 꼬인애들많네요
가고싶은 학교 로스쿨은 못갔었겠지

로스쿨 재학생 2017-04-15 21:59:35
인간적으로 변시 1~3회는 변호사 거져 된거라는 평가가 있는데

논리 2017-04-15 17:09:33
논리가 좀 이상하네요. 운동만 하던 사람이 법학과에 입학한 상태에서,
(1) 로스쿨 입학->졸업 후 변호사 되는거랑
(2) 공부해서(심지어 4수) 사법고시 붙는거랑
상식적으로 뭐가 더 불가능하고 어려운지는 쉽게 알수 있지 않나요?
아니 저는 로스쿨러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데 이 논리 설명해 주실 수 있는분?

지니 2017-04-15 06:31:40
로스쿨에도 이미 복상특기자 였던 채대 출신,운동만 했던 체육교육과 출산들도 여러면 합격하여 다니고 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을 축하하지만, 앞으로는 성급한 일반화는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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