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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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87)
  • 박준연
  • 승인 2017.06.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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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최고의 순간은 아직(The best is yet to come)

주말에는 장을 보면서 종종 꽃을 산다. 주말에도 그렇지만 평일 밤에도 회사보다는 집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꽃이 한 송이라도 있는 업무 환경과 그렇지 않은 업무 환경의 차이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그때 싱싱한 계절의 꽃을 사는데, 요즈음에는 해바라기와 작약을 자주 산다. 작약은 가급적이면 꽃봉오리로 고른다. 탁구공 크기의 작은 꽃봉오리를 보면, 과연 여기서 화려한 작약꽃이 필까, 이건 혹시나 꽃을 못 피우는 꽃봉오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하룻밤이 지나면 그 공 모양의 봉오리가 조금 벌어지고, 3일 정도가 지나면 꽃이라도 불러도 좋을 정도로 조금 피고, 그 다음날 정도면 겹겹의 꽃잎이 활짝 피는 이 과정 자체를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약꽃이 어느 정도 피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로스쿨 첫날인지 둘쨋날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리엔테이션중 로스쿨의 학사 관리 담당하는 분들이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부학장 (Vice Dean) 중 한분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come)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다. 그때는 이것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유명한 노래 제목이라는 사실도 몰랐지만, 냉방을 지나치게 틀어 춥기까지 한 로스쿨 강당(Tishman Auditorium)에서, 서울에서 뉴욕으로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시차로 멍한 상태에서 타지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을 아직 떨치지 못한 나는 새로 만난 로스쿨 동기들한테 안 들키도록 얼굴을 돌리고 조금 눈물을 흘렸다.

2015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기간 한정으로 독자의 질문에 일본어와 영어로 답을 해주는 웹사이트(村上さんのところ)를 개설하였다. 그의 초기 중편과 단편소설 및 에세이의 팬을 자처하는 나는, 질문 몇 개를 열심히 보낸 끝에 단편 소설 패밀리 어페어(Family Affair)의 등장 인물에 대한 질문에 드디어 답을 받게 되었다. 대답은 요컨대, 이상적인 이미지를 탤리즈먼(talisman)처럼 소중하게 간직한다면, 힘든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도, 심지어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이 대답을 받은 직후에는 멋있는 문장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질문과 대답 중 일부가 책으로 출판되었지만 내 질문은 책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문득, 기쁜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최고의 순간은 아직이라는 말은 무모하게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 로스쿨 생활의 행운의 마스코트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랬지만, 통계상으로는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는 학생의 반수 이상이 대학 졸업 후 일을 하다가 로스쿨 진학을 결정한다고 한다. 첫번째 직업을 그만두고 고민 끝에 로스쿨에 진학하는 만큼, 로스쿨 진학에 더 진지하고 절실하게 임하는 측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반면에 내 선택이 과연 잘 한 것인지,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는 것이 옳은지 하는 회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 역시 낙천적인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로스쿨 진학뿐만 아니라 많은 선택의 과정에서 내 선택을 의심한 경험이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이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말은,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그 후에도 큰 현실적인 도움은 주지 않는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합리화라고 할지라도, 힘이 되는, 좌절하지 않고 조금 힘을 내어볼까 생각하도록 해주는 행운의 마스코트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주에 사온 만개한 분홍색 작약꽃, 이번 주말에 사온 흰색 작약꽃 꽃봉오리를 창가에 늘어놓고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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