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50) - 여름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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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50) - 여름로망
  • 차근욱
  • 승인 2017.08.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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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어린 시절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낼 계획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란데다 할머니도 함께 사셨기 때문에 방학 때면 찾아갈 고향도 시골도 없었다. 일단 태어났으니 태어난 곳이 없을 수는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 나는 그립고 정겨운 고향에서 지내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편에 속한다. 고향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늘 도회지로 나가고 싶어 한다지. 나 역시 그런 것일지 모른다. 고향에서 살고 있는 탓에 답답한 고향을 떠나고 하고 싶어 하는 소년시절의 막연한 동경이었을지도 모르지.

내 고향은 서울이다. 그게 참 싫었다. 지금도 어디 사람이냐 누군가 내게 물을 때면 ‘서울사람’이라 말하는 내 답이 참 시시하다. 나도 방학이면 시골에 가서 매미도 잡고 가재도 잡고 냇가에서 송사리도 잡고 싶었다. 마당에서 화톳불을 피우고 평상에 앉아 수박이랑 참외랑 먹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친척들 모두 대도시에 살고 있는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호사였다. 그게 늘 아쉬웠다. 그나마 어린 시절 교회에서 가는 여름 수련회에서 그 비슷한 것을 하기는 했는데, 그게 ‘우리 시골’이 아니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 조금 맥이 빠졌다.

‘시골 할머니 댁’이라는 말의 어감은 참 좋다. 가는데 아무리 오래 걸려도 신나서 가고 싶을 만큼. 하지만 사실, ‘시골 할머니 댁’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기대는 이기적이다. 순전히 할머니가 보고 싶다기보다는 시골의 자연환경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향토 생활에 대한 기대가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보면 어린 시절, 방학 때 ‘할머니 댁’에 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도 결국은 내 이기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조카들은 꼬꼬마 시절부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을 좋아해 어떻게 해서든 우리 집에 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조카들이라고 다를 바 있을 리 없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집을 부러워했던 이유가 전원생활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현재 나의 조카들은 ‘게임’ 때문이다. 시골하고는 거리가 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이라면 컴퓨터로 하루 종일 게임을 하고 스마트 폰과 태블릿으로 게임을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을 보러 가고 싶다며 엄마를 조를 수밖에. 뭐, 살면서 하루 이틀 정도 게임만 하는 날이 며칠 있다고 해도 세상이 망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조카들을 보면서 게임만 하네 마네 하면서 채근하지는 않았다. 제 녀석들도 평소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려니 하면서. 다만 나와는 벗어나 가고 싶었던 곳이 달랐던 것뿐이다. 내가 벗어나 가고 싶었던 곳이 시골 나무숲이었다면, 내 조카들이 가고 싶었던 곳은 성능 좋은 컴퓨터가 있는 외할머니 집인 게다.

펜션이나 호텔에서 묵는 하루는 심심하다. 낸 돈이 얼마인데 이러고 있나, 뭔가 즐거워야 할 것 같은 압박 속에서 느긋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죄어 오니 놀러왔다 해도 초조하기가 이를 데 없다. 만약에 시골집이라면 그야말로 느긋하게 툇마루에 누워 지나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그러다 날이 좋으면 냇가로 가서 가제도 잡고 송사리도 잡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발을 냇가에 담근 채 가만히 바위 위에 앉아 있을 텐데.

다시 생각해 보면, 결국 시골이라 해도 다 같은 시골이 아닐지 모른다. 아무리 경치 좋은 곳에 있는 펜션이나 호텔이라 해도 그 자체만으로는 신나거나 즐겁지 않다. 하지만 조금은 시시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시골 할머니 집’이라고 한다면 신나지 않았을까.

게임만 하는 조카들이라고 할지라도 최신사양의 컴퓨터가 있는 곳만이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그 게임을 외할머니 댁에서 한다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외할머니 댁에서 외삼촌과 꼭 대화를 하지 않는다 해서 섭섭해 할 것은 없다. 이미 조카들은 외삼촌이 있는 ‘외할머니 댁’에 있는 것이니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방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조카들을 보며 조금 다르긴 해도 결국은 나와 같았던 거려니 싶었다.

시골에 조용하고 물 맑은 곳을 알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여름인 탓도 있지만, 물 좋고 인심 좋은 시골은 내 어린 시절부터의 로망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저 시골 경치 좋은 곳만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누군가 햇살처럼 환하게 웃어주는 산 넘어 바다 건너 어디메가 그리웠던 것이겠지.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씩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고향’은 ‘고향’인 모양이다. 그렇다. 우리에겐, ‘고향’이, 바로 그 ‘마음 저린’ 그리움이 있는 누군가가 부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서울도 뭐, 내겐 그리운 고향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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