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57) - 차 한 잔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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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57) - 차 한 잔 하실까요?
  • 차근욱
  • 승인 2017.10.2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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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차 한 잔 하실까요? 라는 말은 매우 사회적이다. 음, 사회적이라기보다는 사교적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차 한 잔 하겠느냐, 라는 말은 무언가 따로 할 말이 있을 때 넌지시 건네는 말이라는 것을, 사회생활을 제법 한 생활인이라면 경험상 잘 알고 있기 마련이다.

이 말은 맥락에 따라 참 무서운 말이 될 수도 있고 참 반가운 말이 될 수도 있는데 덕분에 두근두근 할 때도 있고 모골이 송연해 질 때도 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무서운 말이 될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나에게 있어, 차 한 잔 하실까요? 라는 말의 의미는 그야 말로, ‘차’를 함께 즐겨보자는 취지의 말이다. 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빤히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느낌인지라,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차를 앞에 두는 것 자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있다면 차라리 산책을 같이 하는 편이 낫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같이 좀 걸을까요?’ 라는 말이 ‘차 한 잔 하실까요?’에 해당한다. 그 외의 경우라면, ‘차 한 잔 하실까요?’는 정말 좋은 향의 차를 함께 마셔보자는 뜻이다. 물론, 향이 좋은 차를 마시다보면 담소도 할 수 있겠지만.

가을은 차를 마시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개인적으로 가을이 깊어갈 무렵 선호하는 차는 생강차인데, 제법 헤비한 생강차를 좋아하는 편이다. 바람이 서늘해 질 무렵, 샛 생강을 물에 잘 씻어 통통통 썰은 뒤 다시 팩에 넣고 빠글빠글 바짝 졸이듯 끓인 뒤 코가 쌔할 만큼의 생강 우린 물에 꿀을 넣어 마시는 생강차만큼 행복한 차는 없다. 알싸하고 개운한 맛은 그야말로 겨울, 그 자체를 마시는 기분이랄까.

최근 들어서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맛있는 카페라떼’이다. 새로운 도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인지라 조금 갸우뚱 하실지도 모르지만, 맞다. 지금 생각하시는 바로 그 카페라떼니까. 실은 나는 커피에 알러지가 있어서 커피를 한 모금만 마셔도 호흡곤란이 오는지라 지금껏 커피를 피해왔지만 이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커피 마시기에 도전했다는 말을 믿을 분은 안계실테니 이실직고 하자면, 내 손으로 만든 ‘맛있는 카페라떼’에 도전하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커피전문점에 들른다고 하더라도 정말 ‘맛있는 카페라떼’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운한 커피 향과 고소 짭잘한 우유의 풍미가 어우러지도록 하는 센스를 가진 바리스타는 지구에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직접 맛있는 카페라떼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게 제법 또 어렵다.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그냥 커피에 우유를 타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뜨거운 우유거품이 바로 ‘카페라떼’ 맛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뜨거운 우유거품을 가정집에서 내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우유는 끓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부풀어 올라 냄비가 넘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유를 끓일 때에는 약한 불로 끓이되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한 순간 ‘푹!’하는 소리가 나면서 우유거품 속에서 공기가 빠질 때 비호와 같이 불을 꺼야 한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유거품이 냄비 밖으로 넘쳐 날테니.

커피의 품종도 중요하다. 끓인 우유거품과 잘 어울릴만한 커피를 찾아 적절한 비율로 조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요즘 알게 된 맛있는 카페라떼의 비결이다. 먼저 커피 진액을 만들어 잔에 따르고 따끈하게 끓여낸 우유의 걸죽한 우유막을 걷어내고 뽀얀 거품을 따라내어 살살 저어 마시는 카페라떼 한잔. 달지는 않지만 깊은 고소함의 안식이란 삶의 작은 쉼표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내 손으로 만든다고 해도, 내 맘에 드는 카페라떼를 늘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날의 운이 허락할 때, 비로소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카페라떼를 마시며 느긋하게 창 밖을 볼 수 있다. 결국 인생에서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정성인게다.

가을은 차 마시기에 좋은 계절이다. 그것이 생강차가 되었든 카페라떼가 되었든 아니면 커피믹스가 되었든. 커피믹스가 따분하다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말이죠, 50년 뒤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커피는 슈퍼리치만 맛볼 수 있는 극상의 사치품이 된다는 예언도 있으니 커피믹스라고 해서 너무 시시해 하지는 마시길. 중요한 것은 차의 따스함에 마음을 맡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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