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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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113)
  • 박준연
  • 승인 2017.12.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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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바이바이 2017년

며칠 전 짐에서 친한 트레이너 M에게 아령을 드는 법을 배웠다. 몇 셋트 정도 하는 게 좋을까 하는 내 질문에 M은 대답했다. 더 이상 힘이 없어서 아령을 못 들때까지. 몸을 괴롭히지 않으면 근육은 발달하지 않거든. 그 후 아령을 혼자 들면서 M의 말을 생각했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 말했지만, 힘든 것이 당연하다, 괴롭지 않으면 성취도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곱씹어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아령 운동이 조금은 덜 괴롭게 느껴졌다.

연말을 맞아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을 골라 독서 목록을 준비했다. 그 중 한 권은 마크 맨슨(Mark Manson)이라는 작가가 쓴 제목에 비속어가 들어가는 베스트 셀러인데, 일종의 자기 개발 서적이라면 자기 개발 서적이지만, 주장하는 바는 좀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고통과 문제, 괴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행복한 삶, 성공적인 삶을 위한 지상과제처럼 취급받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문제와 고통을 직면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농담을 섞어서 하는 책이다. 따라서 관건은 의미가 있는 문제, 의미가 있는 고통을 선택하는 것, 자신이 선택한 문제와 고통을 즐기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 연말 휴가를 떠나고 평소보다 훨씬 조용해진 회사에서 올해 한해를 되돌아보았다. 회사를 옮기고 2년여의 기간 동안 많이 바빴던 안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2016년과는 달리 2017년은 이제껏 해왔던 일들에 더해 새로운 일을 하면서 클라이언트를 돕는 동시에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연말이 그렇듯 성취감에 비해 이루지 못한 계획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다. 업무와 관련된 여러 분야를 보다 깊이 공부하고, 기회가 닿으면 글로 옮겨보려고 한 결심을 많이 실천하지 못한 것이 특히 아쉽다.

연말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2009년 뉴욕에서 보낸 연말이다. 그해 겨울 지역신문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 지옥에서 온 1년이 끝나간다. 다 잊고 새해에는 새로 시작하자. 그 부분을 잘라내어서 수첩에 넣어두었다. 나 개인적으론 2009년이 지옥까진 아니었다. 졸업을 마치고 바 시험에 합격하고 졸업 후 취직도 결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발 전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은 나 역시도 비껴가지 않았다.

예년대로라면 벌써 일을 시작했어야 할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경기의 영향으로 업무 시작이 연기되었다. 로스쿨 교수님의 집필을 도와 민사소송법상의 기판력 (res judicata과 collateral estoppel)에 대한 리서치와 초안 작성을 하며 내 나름대로는 바쁘게 연말을 보냈지만 업무 시작 일자가 결정되지 않은 이상은 "무직"이었고, 로스쿨 3년을 보냈지만 아직도 낯선 도시에서 불안하고 춥게 보낸 연말이었다.

이후 연말이 되면 2009년의 연말을 생각한다. 그때의 문제와 걱정은 마무리되고 이제는 새로운 고민과 문제가 늘었다. 그렇지만 최소한, 예전의 문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제를 고민한다는 측면에서는 진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연도가 바뀌는 것은 단지 숫자가 바뀌는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에도 일리가 있지만 적어도 새해가 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된다. 1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자기 자신의 노력과 고생을 칭찬하고, 또 잊고, 다시 시작할 시기가 다가온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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