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46)- 자연인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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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 정치 (46)- 자연인 신드롬
  • 강신업
  • 승인 2018.01.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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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자연인의 삶을 다루는 TV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산에 들어가 자연을 벗하며 사는 사람들의 얘기는 일상에 지친 사회인들에게 위로와 활력을 동시에 준다. 사회인들은 욕심을 버리고 적게 소비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TV에 그려지는 자연인의 모토는 갖가지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도도 없이, 전기도 없이, 아니 문명의 이기에 관한한 ‘거의 아무것도 없이’ 살면서도 자연을 벗하며 사는 삶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자동차도 오를 수 없는, 오로지 사람의 두 다리로만 닿을 수 있는 좁고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야 겨우 닿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살면서도 푸른 하늘, 맑은 공기, 풀과 나무, 그리고 새와 벌레와 더불어 누구보다 행복해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때문에 사실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떠나고 싶어 하고 미래의 자연인을 꿈꾸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삶이 각박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은 하루하루 숨이 가쁘다. 생계에 쫓겨 하루하루 닥치는 일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탓에 삶과 세상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도시의 삶은 사실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디는 것’이다. 치솟는 집값,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 올라만 가는 물가는 정말 사람들의 진을 빼놓는다.

자연인의 행복은 치열한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서서 넓고 깊게 세상과 삶을 관조하는 데서 온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되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억지로 듣지 않아도 된다는 그 것만으로도 자연인은 더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그 곳, 나만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의식한 나머지 쓸데없이 부풀렸던 허례와 허식을 걷어내고 원래의 내 모습을 찾는다. 자신의 지난 삶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의미 있는 것인지를 검토하며 마음 속 깊숙이 박힌 독단과 선입견을 제거한다. 마치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바쁘게 서둘러서 성과를 내려 안달하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년~1778년)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제도나 문화 속에 들어가면서 부자연스럽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은 순수하고 선하지만 아이들은 자라면서 제도와 관습의 틀에 갇혀 나쁜 생각을 배우고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루소가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며 다시 자연 상태를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은 인위적인 제도와 문화가 인간을 진정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아니 오히려 인간의 불행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는 깨달음의 소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루소를 비판하며 문화가 없는 자연 상태는 야만이라고 했지만, 이에 대해 루소는 그것은 '고결한 야만'이라고 반박했다.

오늘 사회인들은 꿈꾸는 것이 바로 루소가 말하는 ‘고결한 야만’이다. 외부의 강제가 없는 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그저 야만인으로 적어도 몇 년쯤 살고 싶다. 더 이상 정신적 근시로 살아가며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도 않다. 소파에 앉아 저녁 뉴스를 보며 이런 저런 각박한 세상사 얘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연인으로 살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이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도덕적 의무감, 현실적 제약 등 많은 것들 때문에 다만 꿈 꿀뿐 도시를 떠나지도 못한다. 그러나 물리적 의미에서의 자연인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신적 의미에서 자연인이 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시작은 우선 욕심을 조금 덜어내는 것이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년~180년, 재위기간 161년~180년)의 명상록엔 이런 구절이 있다. “마치 만년이라도 살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죽음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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