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프레셔스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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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프레셔스의 기적
  • 안혜성 기자
  • 승인 2018.06.22 12: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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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몇 년 전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시간을 허송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멍하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기도 했다.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고, 다른 이들이 간절히 바라던 기회를 잡았는데도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상태는 더 악화됐다. 허송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지는 자괴감은 바닥이 없는 늪처럼 몸과 마음 모두를 집어삼켰다.

아주 작은 기적이 하나 일어나 줬으면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기적 같은 인연이나 기회를 만나 개과천선하고 인생 역전을 하는 스토리들이 제법 흔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류의 이야기 중에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들도 꽤나 많다.

자괴감과 무력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 시절, 주인공의 이름을 딴 영화 프레셔스를 선택한 것은 그런 작지만 위대한 기적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됐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당시 유행하던 DVD방의 진열대에 놓인 표지에서 매우 불행한 처지의 한 소녀가 특별한 인연을 통해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내용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정도의 설명을 보고 선택했다.

그런데 영화는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스포일러 있음). 프레셔스 라는 사랑스런 이름을 가진 16세의 소녀가 임신을 이유로 퇴학을 당했다. 뚱한 표정에 글을 읽고 쓰는 것은 물론 의사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고도비만의 흑인 소녀. 아버지는 프레셔스가 어릴 때부터 그녀를 강간했고 그로 인해 두 명의 자식이자 동생인 아이들을 낳았다. 어머니도 그녀를 보호하기는커녕 남편을 뺏겼다는 질투심을 드러내며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고 프레셔스를 보조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도입부에서의 프레셔스는 표정이 없고 죽은 생선처럼 흐릿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음을 닫고 생각을 멈추고 살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괴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는 망상의 세계로 도피함으로써 현실을 외면했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가고 숨기기만 하던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퇴학을 당하고 가게 된 대안학교에서 레인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읽고 쓰는 법을 배우면서부터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삶 속에서 그저 ‘쓸모없는 존재’이던 프레셔스는 레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스스로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보며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 자신을 발견한 프레셔스는 그녀를 지옥에서 살게 했던 이들과의 인연을 끊어내고 두 아이들과 함께 망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당당히 스스로의 인생을 살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실 지금 기자의 눈을 쓰기 위해 다시 떠올린 프레셔스의 이야기에서 느낀 감정이나 생각은 당시의 충격과는 사뭇 다르다. 프레셔스가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고 있던 중에 정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참으로 잔혹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치는 내용이 있었다. 기적적인 반전과 완벽한 해피엔딩이 절실했던 당시에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삶이 프레셔스에게, 그리고 내게도 조금만 더 관대했으면 좋겠다는, 누구에게 향하는지도 모르겠는 기도가 절로 흘러나왔더랬다.

그 기도는 지금도 유효하지만 이제는 프레셔스의 이야기를 보고 여성과 아이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위해와 고통에 대한 분노와 사회적 책임 등 보다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을 진정 ‘삶’으로 만들어주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지금 이렇게 길게 프레셔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마지막 문장을 수험생들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길고 험난한 수험의 길 위에서 방황하고 흔들릴 수 있다. 열심히 하는데도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아 좌절하고 내 길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프레셔스의 이야기에서처럼 지금 달리고 있는 길의 끝이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품고 스스로가 선택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간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자 하나의 기적을 이루는 일이 아닐까. 지금, 꿈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이들, 넘어져 울고 있는 이들, 혹은 잠시 쉬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뜨거운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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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아 2021-05-08 10:25:32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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