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4)-형사조정은 과연 회복적 사법의 친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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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4)-형사조정은 과연 회복적 사법의 친자가 될 수 있을까
  • 임수희
  • 승인 2018.11.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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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여러분, 게이트키퍼(gatekeeper)라는 말 아시지요.

우리말로 문지기나 수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들은 문 앞에 서서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지켜보며 거르는 일을 합니다.

문 안으로 들여보내도 될 사람과 들여보내면 안 되는 사람을 거르고, 이쪽으로 보낼 사람과 저쪽으로 보낼 사람을 가리는 거지요.

유엔에서 2006년에 발간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관한 핸드북(Handbook on Restorative Justice Programmes)에 회복적 절차의 참여자들 중 ‘검사’파트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최근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대륙법계든 영미법계든 많은 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인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게이트키퍼는 검사다.’

대륙법계든 영미법계든 법체계의 차이를 막론하고 수많은 나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회복적 사법의 게이트키퍼가 검사라는 말이죠.

어떤 형사사건이 발생하고 사법절차를 밟게 되었을 때, 일정한 단계나 과정에서 그 사건이 회복적 사법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일반적인 기소나 재판 절차를 밟을 것인지, 아니면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으로 회부할 것인지를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재량을 갖는 역할을 바로 검사가 하는 나라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형사조정제도는 검찰 단계에서 검사가 회부하도록 입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경찰 단계나 법원 단계에서는 공식적인 형사조정제도 자체가 없기 때문에 형사사법절차에서 유일한 조정제도를 검찰이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앞서 조사된 나라들과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과연 정말 우리나라도 위의 나라들처럼 검사가 회복적 사법의 게이트키퍼인 나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검사가 형사조정을 회부하는 권한을 가진 게이트키퍼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복적 사법의 게이트키퍼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 정말 맞을까요.

그 형사조정제도가 회복적 사법적인 프로그램인 것이 확실할 때라야만 결국 검사는 회복적 사법의 게이트키퍼라고 할 수 있는 것일 텐데요.

여러분이 보기에는 어떠신가요.

혹시 우리나라의 형사조정제도를 직접 경험해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특히 고소인으로서나 피의자로서나 직접 형사조정의 당사자가 되어 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각자의 경험에 기초해 볼 때 어떤 생각들이 드시는지요.

2.
지난 13회와 지지난 12회 글을 읽으신 분들은 갑자기 왜 제가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의문을 던질까 하고 궁금하실 겁니다.

12회에서는 검찰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성공적인 형사조정의 사례를 하나 소개해 드렸고, 이어 13회에서는 검사들이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피해자 보호이며 피해자와 실질적 피해회복에 대한 고려 하에서 검찰이 형사조정제도를 도입하였다고 말씀드렸었으니까요.

실질적 피해회복을 도모하는 형사사건의 적정 처리가 바로 회복적 사법의 이념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런데 그런 제가 왜 갑자기 ‘과연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회복적 사법의 게이트키퍼가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일까요.

3.
미리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위 질문은 저의 질문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우리나라에서 검사가 회복적 사법의 게이트키퍼가 맞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회복적 사법의 진정한 게이트키퍼가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아가 저는 형사절차에서 회복적 사법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가 아니고 게이트키퍼도 하나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형사조정제도가 ‘회복적 사법’적인 것이냐는 질문은, 사실 그동안 학자들 사이에서나 형사조정제도를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들 사이에서 늘 나왔던 문제제기였습니다.

“이 아이, 너무 안 닮았어! 친아들 맞어?”

마치 막장드라마 대사에 자주 나오는 것 같은 질문인 셈이지요.

4.
우리나라에서 형사조정제도가 저런 질문을 받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법무부와 검찰에서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형사조정제도를 도입한 것은 분명합니다만, 그 태생에 있어서 우리나라에 특수한 민사분쟁 성격의 고소사건의 처리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민사분쟁성 고소사건이 경찰이든 검찰이든 넘쳐납니다. 민사분쟁성 사건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력을 상당히 소진시키면서도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그 때문에 수사기관이 정작 집중해야 할 곳에 수사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구요.

2005년경 피해자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형사조정이 시도되던 때에, 한편으로 대검찰청에서는 넘쳐나는 고소사건의 처리 방안이 다각적으로 강구되고 있었죠. 그리고 결국 피해자지원센터의 형사조정이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회복 뿐 아니라 재산범죄 고소사건의 처리 방편의 하나인 성격을 겸하게 된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 형사조정제도는 태생부터 민사분쟁성 고소사건의 처리방편으로써, 검사의 수사력을 보다 중요한 형사사건에 집중시키기 위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현재 범죄피해자 보호법 시행령 제46조에 규정한 형사조정 대상 사건을 보더라도, 제1호 ‘차용금, 공사대금, 투자금 등 개인 간 금전거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으로서 사기, 횡령, 배임 등으로 고소된 재산범죄 사건’, 제2호 ‘개인 간의 명예훼손ㆍ모욕, 경계 침범, 지식재산권 침해, 임금체불 등 사적 분쟁에 대한 고소사건’으로, 민사분쟁성 고소사건이 우선 규정되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건들은 일반적으로 회복적 사법에 적합한 사건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아니지요. 회복적 사법이 필요한 유형은 보통 돈 보다는 관계가 문제되고, 범죄로 인해 관계가 파괴되거나 공동체 내에서 그 깨어진 관계의 회복이 필요한 사건들이 거론되곤 하니까요. 돈만으로 곧바로 피해가 전보되는 사건들은 굳이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로 하기 보다는 그냥 민사소송을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그 외에 제3호에 ‘제1호 및 제2호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형사조정에 회부하는 것이 분쟁 해결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고소사건’과 제4호에 ‘고소사건 외에 일반 형사사건 중 제1호부터 제3호까지에 준하는 사건’을 규정하고 있어서, 이에 근거해서 회복적 사법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한 사건들이 광범위하게 형사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되고는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아직도 많은 수의 형사조정은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이나 사기, 횡령 등 민사분쟁성 고소 사건 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 친자식 맞어? 너무 안 닮았어!”라는 막장드라마 대사처럼, “우리나라 형사조정제도가 회복적 사법 제도 맞어? 안 닮았잖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던 것이지요.

5.
여러분, 막장드라마들 보시나요.

막장드라마들을 보면, 자식으로 키우는 주인공이 나중에 보니 어디서 주워 온 아이를 키운 것이었고, 그래서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이 막 방황하거나 다른 등장인물들과 갈등을 막 빚게 되지요.

그런데 막장드라마가 왜 막장드라마인가요. 종반으로 흘러가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주워 키운 아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보니, 아기일 때 잃어 버렸던 친자식이었더라, 뭐 이런 결말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 어쩐지! 피는 못 속여! 얼굴은 안 닮았는데 어째 하는 짓이 그렇게 똑같더라니!”이런 대사로 마무리가 되곤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민사분쟁성 고소를 수사기관에 많이 하는 것은,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증거수집 수단이 마땅치 않은 우리 법제의 특수성상 빚어진 결과이고, 우리 사법 시스템의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넘쳐나는 고소사건 처리방안으로 형사조정제도를 찾아 낸 것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고 달리 대안도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려고 밖에서 데려 온 것이지요.

하지만 그 아이는 알고 보니 갓난아기일 때 잃어버린 내 친자식이었던 겁니다.

형사조정제도는 고소사건 처리에 기여하고 있지만, 회복적 사법의 피가 흐르는 친자식이고, 처음엔 안 닮은 것 같던 생김새나 몸짓도 커 가며 점점 변해 가고 있는 것이지요.

민사분쟁성 고소사건이 넘쳐나는 특수성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형사조정제도는 처음부터 회복적 사법의 친자식으로 알아 볼 외양을 취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출발은 다소 꼬였을지 몰라도 법제화 된지 10여년이 지나면서 질적으로 상당한 진전과 변화가 있어 왔고, 검찰에서도 형사조정제도의 이념적 기초를 회복적 사법으로 확립하고 그에 기반한 형사조정제도를 정착시키고자 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하여 다음 회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 막장드라마의 흔한 스토리에 비유하다 보니, 드라마 대사에 나오는 표현을 차용하게 된 것일 뿐, 입양아나 친자나 똑같이 사랑으로 키우는 귀한 자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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