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로스쿨 오피니언- 이상(理想)은 무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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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로스쿨 오피니언- 이상(理想)은 무사할 수 있을까
  • 김영호
  • 승인 2018.11.12 16: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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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9기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2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

작년 가을학기 계약법 수업 중 언젠가,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법률가가 되기로 한 이상 일정 부분은 평범함을 거부한 것입니다. 일생에서 법을 실현해 나가는 존재로서, 직업적 의미에서의 법 판단은 곧 여러분이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재적 의의가 달린 문제일 수 있습니다..(중략)..법전의 법문들을 껍데기로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스스로 그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다소 거창해 보이는 표현을 써가며 말씀하셨다. 법률가가 뭐라고 평범함을 꼭 거부해야 하는 건지, 당장 눈앞의 실체법을 배우기도 벅찬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에게는 손에 당장 잡히지 않는 말이었다. 사실 인간이 대단한 것은 각자가 스스로의 별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각 수강생마다 이루고자 하는 바는 다 다를 것인데, 한 개인의 코멘트 정도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통했던 바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비록 그 시작은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짧은 과거를 되돌아보면 법률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스스로의 마음속에 일정한 이미지를 어떻게든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이미지라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명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법복을 입은 검사 정도로 대표될 수 있을 것 같다. 붉은 색을 띄는 그 법복을 입는다면, 각종 부조리에 대해서 상대의 지위가 어떻든 법을 예외 없이 적용하여, 법 앞에 평등하게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흔히 회자되는 말로는 법불아귀(法不阿貴), 즉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맞겠다.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는, 사회에는 법적,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사건이 빈발하고 있고, 이것을 평등한 법의 적용을 통하여 바로잡는 것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이는, 앞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 개인의 ‘존재적 의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너무나 이상적이고 단순한 것에 다름 아니었기에, 깨지고 변형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현실과 마주해 나가는 것은, 한때는 시련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첫 가을을 맞았던 5년여 전,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수사를 하던 검찰에서 사뭇 납득할 수 없었던 일이 하루하루 언론을 통해 중계되듯이 밝혀지던 날들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었지만, 눈앞에서 전개되어가는 양상들을 보자니 결국 법은 정치를 이길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 분노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 동시에, 나의 그 이상적인 ‘이미지’는 이미 종전의 그것과 같을 수만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법을 접해보니, 애초에 법 자체가 그리 객관적인 것은 못 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증거에 의한 사실의 인정이라는 것도, 어떤 증거를 채택하고 그에 얼마나 신빙성을 부여할 것인지에 달려있으며, 법의 적용에 있어서 법리라는 것도 하나의 이론인 이상 절대적이지 못하며 절대적이어서도 안 된다. 심지어 ‘대법원 판례’조차, 현 시점에서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은 비극이다. 물론 한 걸음 더 생각해보면, 법이 객관적일 수 없는 건 꼭 법 자체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법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라고 하는 것이 확정적일 수가 있는가. 당장 눈앞의 똑같은 사실을 보고도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할 것이며, 법 이론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것도 없다.

영미법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는 “Challenge, you are the law”라고 강조하시곤 하셨다. 정답은 없으니 무엇이 법인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설득해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런 말이 함축하고 있는 말에 대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연방주의자 논집의 78번째 논문에서 해밀턴은 사법부를 빗대어 민주주의의 시스템 하에서 가장 덜 위험한 기관이라고 말했다고는 하지만, 법 판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한 개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를 넘어 사회의 물줄기를 바꾸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견해 차이는 있겠지만, 과연 이것이 원래 법이 추구했던 바인가? 평등한 법의 적용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경우를 앞으로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스스로에게 그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묻고 생각해보면서, 지금까지 짧게나마 그래왔듯 앞으로도 스스로의 이상을 미약하게나마 지켜나갈 수 있는 세상이기를 희망한다. 때로는 그 모습이 조금씩은 변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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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2018-12-06 19:18:49
휴......... 뜬구름 잡는 교수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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