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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국제정세와 한국이 나아갈 길- 국제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국내 재판과 정부의 대응

기사승인 2018.12.06  11: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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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석 박사
전환기정의워킹그룹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최근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에는 일제 징용 피해자들의 일본기업 상대 소송도 포함되어 있다. 징용판결 처리를 해외파견 법관 제도의 확대와 맞바꿨다는 비판으로 유엔대표부 법관 파견이 내정 단계에서 취소되는 일까지 있었다.

일제 징용소송은 원고는 한국의 사인(징용 피해자), 피고는 일본의 사인(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기업)으로 한국 정부는 엄밀히 말해서 당사자는 아니지만 재판 결과가 한일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는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다. 권리의식의 신장과 변호사 수 증가로 소송이 용이해지고, 정부와 국회가 정치적 교착상태로 갈등 조정이나 의사결정에 실패하면서 그 공백을 법원이 메우는 형국이다.

일제강점기 중대인권침해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정부 간 해결이 당연시되었다.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과 미국 법원에 이어 한국 법원에 일본 기업을 제소하는 것도 1990년대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국내법원은 더 이상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의 일본군 위안부 행정부작위 위헌결정(2006헌마788)으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최대 외교현안이 되었다.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판결(2009다22549)의 경우에도 일본 정부는 배상금액을 산정한 파기 환송심 판결이 재상고심에서 확정되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른 중재 회부를 공언하고 있다.

물론 이는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그리스에서는 2000년 민사·형사 대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디스토모 학살에 대한 독일 정부의 배상판결을 확정했지만 2003년 민사·형사 대법원, 행정 대법원, 회계법원 법관들로 구성된 특별최고법원은 유사한 사건에서 사실상 디스토모 판례를 뒤집고 독일 정부의 재판관할권 면제를 인정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대법원이 나치 강제노동 사건에서 독일 정부의 재판관할권 및 집행관할권 면제를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가 독일이 이탈리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2012년 독일이 승소하고, 이탈리아가 이를 수락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2014년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법정공방은 재개되었다.

이렇듯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는 정부가 소송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공익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 의견서만 참조하는 것은 편파적일 수 있으므로 다른 공공단체도 적절히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영미법 국가에서 유래한 법정조언자(amicus curiae) 제도가 대륙법 국가에서도 도입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물론 법정조언자 제도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연방법원이 연방정부의 의견서를 지나치게 잘 따른다는 사법 자제주의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재판부의 재량에 따른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54년 브라운 판결 전에 흑백분리 학교의 유지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소련 경도로 안보를 위협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여 연방대법원의 만장일치 위헌 결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시 “인권 외교”를 표방한 카터 행정부의 의견서는 1980년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국제법을 위반한 해외 인권침해에 대한 민사관할권을 인정한 필라르티가(Filartiga) 판결을 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도 2002년 민사소송법 개정,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참고인진술제도가 도입되었고, 2015년 대법원은 미국 연방대법원 규칙 제37조의 법정조언자 규정을 참조한 민사소송규칙 제134조의2, 형사소송규칙 제162조의2를 신설하여 공개변론이 없는 사건에서도 정부가 의견서를 제출하고, 대법원이 공공단체의 의견서 제출을 허용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법체계상 민사·형사소송규칙의 상위법인 민사·형사소송법에 근거 규정을 신설하고, 미국 연방대법원 규칙처럼 공공단체의 의견서 제출허가 신청 및 의견서 제출 절차와 방법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며, 허가 여부를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물론 헌법과 법률에 의한 궁극적 판단은 어디까지나 법관의 몫으로 정부나 공공단체의 의견서는 참고용일 뿐이다.

참고인 의견서는 외교정책 수단의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1990년대 미국 법원에서 독일 기업들이 유대인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 제소되었을 때 전후조약에 따라 청구권이 포기되었다는 의견서를 내기를 거부했다.

침묵으로 귀청이 터진다(silence is deafening)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일 듯싶다. 미국 소송의 장기화와 여론재판에 독일은 백기를 들었다. 2000년 협정에서 독일 정부와 재계는 법적 책임 인정은 거부하면서도 도덕적,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여 100억 마르크 강제노동 보상기금 설립에 합의했다.

2000년 협정은 또한 모든 미국 국내소송의 취하를 보상의 전제 조건으로 못 박고, 미국 정부가 소 각하를 권하는 의견서를 제출할 것을 규정했다. 그제야 미국은 2000년 합의에 반대하는 피해자들이 계속하던 소송에 의견서를 제출하여 재판부의 소 각하를 유도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 및 기업을 상대로 한 미국법원 소송에서 처음부터 조약에 따른 청구권 포기를 이유로 소 각하를 권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이렇듯 정부 의견에 사법부가 휘둘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삼권 분립이나 재판의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다. 또한, 정부가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법원 판결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고, 대외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재판 관련 의견 개진은 필요한 경우에만 관련 법령이나 규칙에 따라 외교부나 법무부가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헌법에 명시된 국무위원이나 기관도 아닌 대통령의 비서에 불과한 청와대 비서실장이 말 그대로 법원 행정을 맡았을 뿐인 법원행정처장을 만나 특정 재판을 논의하는 것은 월권으로 부적절한 행위이다.

아울러 국가인권위원회도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8조에 따른 법원의 담당 재판부나 헌재에 법률상의 사항에 관하여 의견을 제출할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랬더라면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결정, 대법원의 미쓰비시 판결도 최신 국제인권규범을 더 충실히 반영하여 국제여론의 관심과 제3국 법원에서의 판결 집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에 따른 외교의 사법화는 시대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정부도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되 법의 지배를 존중하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신희석 desk@lec.co.kr

<저작권자 © 법률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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