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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전문의 박성근의 마음 이야기- 법이 해줄 수 있는 것

기사승인 2018.12.07  22: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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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근
정신과 전문의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작년, 급하게 한 여학생과 그 부모님, 그리고 관계 기관을 설득하다시피 해서 학생을 비교적 장기인 수 개월 간 내가 근무했던 병원에 입원시킨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수 년 동안 친척을 비롯한 몇 명의 남성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또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가해자들의 협박 때문에 그 사실을 숨기고선 버텨오고 있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시행한 선별 검사에서 심한 우울증으로 나온 덕분에 상담 교사와 상담을 했고, 또한 다행히도 그 상담 과정에서 그 사실을 털어놓아 사건이 알려진 경우다.

후에 가해자들은 재판을 받았으나 무혐의나 집행유예, 또는 아주 짧은 형을 받고서 사건이 끝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 징역을 짧게 산 가해자가 감옥 안에서 그 학생에게 편지를 보내선 ‘출소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몇 번 협박을 했다. 그 사람의 출소일은 내가 그 학생을 상담한 때로부터 불과 한두 달 가량이 남아 있었다. 학생은 심한 우울증 증상과 신체화 증상 또는 전환 장애로 인해 자꾸 쓰러졌고 해리증상으로 기억이 중간 중간 소실됐으며 대인공포증과 공황장애가 생기는 등 각종 심한 증상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후에 복수를 당하고 다시 성폭행을 당하고 나아가 목숨이 위험해질까봐, 나는 입원을 좀 길게 유지하면서 모든 보호 수단을 함께 강구하고 의논하자고 했다.

그때 난 현실적으로 경찰이나 법이 해줄 수 있는 확실한 보호 수단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이 학생이 다시 성폭행을 당해야 그들은 움직인다. 또,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가해자들에게 관대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재판 과정에서 그 학생과 부모님은 수없이 상처를 또 입을 것이란 사실을 느꼈다. 법은 있고 시스템도 있다고 하는데, 아무 도움이 안됐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학생의 부모도 이제는 마치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듯, 가장 악독한 가해자들이 곧 출소할 텐데도 무기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모로서 열심히 싸워봤지만, 기대와 현실은 차이가 커도 너무 컸던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엽기적이고 사이코패스적인 한 악덕 기업체 대표 양진호의 피해자들도, 모두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양심 고백을 했을 것이다.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 또한 어쩌면 목숨을 걸고 취재를 한 게 아닐까. 지금 그 대표는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피눈물과 목숨 값으로 번 엄청난 돈으로 소위 비싸고 능력 있는 변호인단을 꾸려 악어의 눈물 같은 가짜 사과를 하면서 수년 전처럼 법원의 선처를 바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정신과 의사인 나로서는 혹시라도 ‘심신 미약’까지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조두순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심신 미약을 악이용해서, 또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것을 악이용해서 최소한의 형량만 받고 심지어 무혐의나 집행유예를 받는 것을 보아 왔다. 재판과정 중에서나 재판 후에도, 피해자만이 이차 삼차 피해를 심하게 당하는 것을 보면서 이번 사건의 진행 과정과 결말 역시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피해자들의 이후 삶이, 정말 염려가 된다. 가해자는 더 교묘해지고 악해질 뿐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사법부는 어떤 기관보다 인권을 중시하는 기관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신과 의사를 20년 해오면서 바라본 사법부는 가해자 인권만 생각하고 중시하는 기관이 아닌가 싶다. 피해자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하기까지 한 약자들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법부가 지금까지처럼 계속 피해자들을 더욱 피해자로 만드는데 한 몫 한다면, 나 같은 정신과 의사들이 이 땅에 수만 명 있더라도 어쩌면 아무 소용없는 공감과 위로만 줄 뿐이지 않을까. 차라리 환자들에게 “빨리 이 땅을 떠나라”고, “더 기대하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고 말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조언일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법보다 돈이 위에 있는 세상은 지옥보다 더한 생지옥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법조계에 양진호의 돈을 받고 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계속 있어왔다고 말한다. 양진호가 또 어떤 방식으로 법꾸라지처럼 법의 허점을 노리고 법조인의 도움을 받아서 빠져 나갈지, 또 재판이 진행된 후로부터 얼마나 빨리 국민들의 관심과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갈지 미리부터 걱정이다. 과거 대한항공의 소위 땅콩 회항 사건도 결국 그렇게 용두사미로 끝나면서 “역시나 돈이 최고”라는 인식만 더욱 확고하게 해주지 않았던가.

과연 이번에는 가해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수준의 벌을 받고, 피해자는 온전히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과연 이번에는 정말 사법부의 소위 ‘엄정한’ 판결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을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성근 desk@lec.co.kr

<저작권자 © 법률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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