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변호사 김지영의 책 속을 거닐다 (6)- 순하게 세월이 흐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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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변호사 김지영의 책 속을 거닐다 (6)- 순하게 세월이 흐르기를
  • 김지영
  • 승인 2018.12.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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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라면을 끓이며>, 김훈, (주)문학동네, 2015
 

 

* 라면
작가는 라면의 맛에 대하여, 그리고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에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을 이어갑니다. 라면이 뭐 그리 대단한 음식이라고 몇 장의 지면을 할애하여 구구절절이 써내려 갑니다. 저는 작가의 라면에 대한 애착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마음이 공허할 때, 이상하게도 그 허기를 달래려 먹었던 것이 저에게는 라면이었죠. 작가에게 평생의 허기를 달래주며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음식이 라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라면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를 달래주는 음식에 대하여 작가처럼 글을 써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반복하는 아버지를 슬퍼하며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독립투사로 헌신하다가, 독립 이후 조국에서 외면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작가는 그런 아버지를 “내 아버지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거듭하는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다”고 표현합니다. 그 아버지가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거듭했던 시대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제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작가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저항과 순종이랄까요. 저항을 하든, 순종을 하든 결국 우리네 아버지의 삶, 그리고 그 자식의 삶도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거듭하며 시대에 맨몸을 갈아야만 하는 운명임에는 다를 것이 없네요. 지난 주말, 응급실에 실려간 아버지를 보았는데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하며 맨몸을 갈았던 아버지는 더 없이 작아져 있었고, 그 모습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 노동, 소외
작가는 일하기가 싫다면서,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의 싸움을 대리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특히나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을 하면서 밥을 먹고 가족을 부양하고 있지요. 데일 카네기는 일에 전념하면 우울감과 무력감을 잊을 수 있고, 그 길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했는데요. 저는 카네기의 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에 전념하며 자신의 소외로부터 오는 우울감과 무력감을 회피하는 것이 행복이라니요. 작가는 우리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이 세상을 근로감독관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데일 카네기의 논리도 그런 근로감독관의 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목수”
작가는 목수가 못을 박는 모습을 보면서 말합니다. “못은 힘의 크기로 박는 것이 아니라 힘의 각도로 박는 것이다...못대가리를 수직으로 정확히 때리지 않으면, 힘이 클수록 못은 휘어져서 일을 망친다.”고 말이죠(p 129). 우리는 조직, 가족, 사회의 힘에 밀려 못을 제대로 박지 못하고 못을 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회의 요구, 가족의 요구에 따르다 보니, 우리 인생의 각도는 제대로 겨눌 시간도 없습니다.

* “목숨”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아주 마음을 끄는 구절을 우연히 어디에선가 들었기 때문이었는데요. “행복에 대한 추억은 별것 없다. 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빈다...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또 그렇게 순하게 세월이 끝나기를 바란다”구요. 임화의 『자고 새면』이라는 시에서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라고 하는데, 같은 마음이었겠죠.
제가 40이 훌쩍 넘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지나간 시련 중에는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니체와 같은 철학자는 ‘초인(超人)’이 되라고 하지만요. 이런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나면, ‘초인’이나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순하게 세월이 흘러가기를 바랍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감사할 때가 많지요.

* “돈”
작가는 원고료로 받은 수표 두 장을 아내 몰래 감추어 놓았다가 감춘 장소를 잊어버렸습니다. 『맹자』 속에 넣었는지, 『공자』 속에 넣었는지, 제자백가서와 동서고금을 모조리 뒤졌다는 작가의 너스레에 피식 웃음이 납니다. 이 세상 돈이란 것이 어떤 자에게는 알아서 굴러들어오고, 작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찾아다녀도 꽁꽁 숨어버리는 현실이지요.
어떤 전직 대통령은 비서관을 통해 재벌 총수에게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라는 한마디를 하였을 뿐인데, 그 한마디를 전해 들은 재벌 총수는 수백억을 싸가지고 청와대로 들어갔다고 하네요. 결국 그러한 돈은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이 없다며 무죄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왔지요. 작가는 직무는 기능이며, 직위는 신분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직위를 갖지 않았다면 누가 그 돈을 싸가지고 가겠습니까. 그런데 법은 엉뚱하게도 직위가 아닌 직무와 관련이 있느냐며 따지죠. 뇌물죄는 있으되, 처벌 받는 사람은 없는 현실은 이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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