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13)-정치양화(政治良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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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13)-정치양화(政治良貨)
  • 강신업
  • 승인 2019.05.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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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한국 정치의 비극은 경제개념인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현상이 정치계에서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개념화 된 이후 많은 정치학자들은 정치권력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과두화(寡頭化)를 경고했다. 당 간부나 지도층의 의사에 의해 하향식으로 지배되는 정당 조직의 형태와 정당 문화를 고치지 않고는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의 과두화 문제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당의 과두화가 가속화되는 것은 한국 정치가 승자독식구조라는 데도 원인이 있다. 이런 정치제제에서는 흔히 사생결단식 정쟁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한국 정치는 특히 패(牌)논리가 강해서, 승리하는 패는 모든 것을 갖지만 실패하는 패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 결국 정치인의 정치적 운명은 개인의 정치적 역량이 아니라 어느 패에 속하느냐,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 갈린다. 자기가 속한 패나 자기가 따르던 패장(牌將)이 승리하면 어중이떠중이까지 너끈히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반면 패배하면 제갈공명 급 인사라도 별 도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각 패는 승자가 되기 위해 소위 ‘다 걸기’를 한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모든 것을 다 갖게 되고, 한 표라도 적으면 아무것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표라도 빼앗으려 든다. 또 패 내에서의 충성도가 정치적 진로를 좌우하기 때문에 패인(牌人)들은 패장(牌將)에게 충성심을 보여주려 안달이 난다. 결국 패와 패 사이에, 패인과 패인 사이에 승자가 되기 위한 살벌한 투쟁이 벌어진다.

패정치(牌政治)의 폐해야 일일이 거론하는 것조차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큰 문제는 정치가 천박해진다는 것이다. 천박(淺薄)이란 보통 학문이나 생각 따위가 얕거나 말이나 행동 따위가 상스러운 것을 이르는데, 패정치로 인해 한국 정치는 천박한 지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막말경쟁은 정치천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주는 현상이다. 말을 참지 못하고 가볍게 내뱉는 것이야 말로 천박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독단에 근거한 이념이 마치 정의이고 진리인양하며 그 바탕 위에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천박의 결과물이다. 천박의 극치는 소위 자기와 자기편은 선이고 상대와 상대편은 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상대방 말을 새겨듣지 않고 그 말을 왜곡하고 침소봉대하는 것 역시 천박함 때문이다. 천박한 정치인들의 욕심은 오로지 정권을 잡아 한 자리 하거나 선출직에 당선되어 호의호식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자들이 무슨 대단한 애국자라도 되는 양 걸핏하면 국가와 국민을 파는 것 역시 천박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는 이런 천박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는데 장애는커녕 오히려 촉매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극단적인 정쟁이 난무하다 보니 앞뒤 안 가리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 당에 충성심을 가진 존재로 취급되고, 그렇게 이 자들은 먼저 당직에 임명되거나 공천을 받는다. 극단적인 패정치에서 당헌 당규는 당의 실력자에 의해 무시된다. 자기와 자기편을 먼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패인들로 하여금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게 만든다. 권력자의 눈에 띌 수 있는 것이라면, 권력자에게 잘 보일 수만 있다면 상대편을 막말로 까뭉개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당은 어떤 경우에도 개인이나 패당의 사익추구 수단이 될 수 없다. 당이 국민의 세금과 당원들의 당비를 통해 운영되는 이상 내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원들의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당 바깥의 유권자들 또한 각 정당에 목소리를 낼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당의 공천은 공개적으로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정당들이 당내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는 한 정계에 정치양화가 많이 유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도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정당들이 하루 속히 천박한 패정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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