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동네형의 공무원 수험일기 (5)-준비와 시작

기사승인 2019.06.11  1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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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07. 공부파트너의 등장, 친구 창환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옆에는 늘 공부파트너가 있었다는 것이다.

신창환18)이라는 초등·중학교 동창 죽마고우가 있다. 내가 소방직 공무원 시험공부를 결심할 때쯤 같은 시점에 이 친구도 7급 건축직 공무원을 목표로 준 비 단계에 있었다. 이 친구는 군 제대 이후, 그 굳은 머리로 수능을 다시 봐서 동국대에 붙어서 다니다가, 다시 편입해서 연대를 갔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다. 공부를 하는 방법을 확실히 아는 놈이었다. 어릴 때 같이 그룹과외를 받고, 학원도 같이 다닐 때부터 머리는 내가 좀 더 좋다고 생각했지만, 공 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는 당시 시점에서 공부에 대한 숙련도는 창환이가 월등 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내가 의도적으로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의 시작은 바로 전 단계에서 소개한 컴퓨터활용능력 1급이었다. 자격증 공부도 동시에 시작했고, 같은 교재로 공부했다. 공부를 소홀히 하면서 필기시험 바로 전날 벼락치기로 밤을 새울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이 녀석이었다. 우리는 같이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가서 필기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둘 다 합격이었다. 이후 있던 실기시험에서 보기 좋게 둘 다 떨어지길 반복하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우리는 똑같은 회차에서 5번의 도전 만에 합격하게 되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5번 만에 합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명을 거론하는 이유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어서이다. 물론 본인에게도 허락은 맡지 않았다.

창환이와 같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건 여름방학부터였다. 편도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이 녀석 집 앞의 독서실로 방학 내내 출퇴근했다. 내가 이 녀석한테 배운 것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독서실을 다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것이 내게는 큰 가르침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카페에서나 공부하는 데에 익숙 해져있었고, 독서실 생활은 학창시절에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매우 답답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창환이 덕분에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짧았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창환이가 복학을 하는 바람에 우리 는 그때부터 떨어지게 되었지만, 그 이후 내가 혼자 다니는 독서실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팔 할은 이 녀석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옆에는 늘 공부 파트너가 있었다는 것이다. 꼭 공부뿐만 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암묵의 라이벌이 되어 끊임없는 경쟁과 소통으로 큰 시너지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공부 초창기 그 어려울 수 있는 시기에 내 옆에 그 녀석의 존재 는 내 수험생활에 있어서 정말이지 큰 행운이자 최고의 시작이었다.
 

   
 

14.02.08. 공부의 시발점, 리치카페

성남 모란역 리치카페. 이곳은 처음으로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곳이 되었다.

리치카페는 경기도 성남 소재의 한 카페이다. 특별한 것이라면 24시간 운영 되는 스터디카페라는 것이다. 큰 빌딩에 6층에 위치해있어 접근성이 좋지는 않지만, 밤낮 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공부할 수 있게 분위기도 잘 조성되어 있으며, 공간이 넓어 그만큼 자리도 많고, 테이블도 넓어 책 놓기도 좋다. 또한 프린트가 가능하고 노트북을 대여해준다는 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스터디카페라는 점이 공부를 하는 데 눈치를 안 봐도 되고, 24시간 영업하기 때문에 밤늦도록 오랫동안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단, 대학교 시험기간에는 늘 사람들이 붐볐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성남 모란역 리치카페. 이곳은 처음으로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곳이 되었다.

이곳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부터 창환이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이다. 이따금씩 학교 과제 때문에 밤을 새우러 오곤 했었다. 공무원 준비를 마음먹고도 집에 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을 다녔던 이유는, 물론 이 카페가 공부하기에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결국은 이 친구가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공부를 하러 온 것이었다. 당시 학교에 아직 재학 중이기도 했고,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서실을 다니기 어려웠던 것이 부가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공부를 혼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가장 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겨울방학부터 1학기(3월부터 6월)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가서 친구와 공부를 했다. 바로 나는 이곳에서 공부를 하는 방법과 집중하는 방법 등을 배웠으며, 공부를 한다는 열의와 내 속 안의 열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있지는 못했지만, 이따금씩 나는 공부를 하면 서 생각했다. ‘나중에 합격해서 이곳에 꼭 와야지. 와서 커피 한 잔 꼭 먹어야 지.’ 이 부분은 창환이와 나눴던 얘기이기도 하다.

당시 공부를 할 자세와 준비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나는 기상시간과 공부 시작시간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학창시절의 게으름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내 파트너 창환이와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것은 카페 도착시간을 9시로 정하고 1분이라도 늦는 사람이 그날 점심을 내기로 한 것이었다. 카페에서는 볶음밥을 식사로 판매를 하고 있었고, 공부를 하면서 이동할 필요 없이 끼니를 때우기엔 그만이었다. 초반에는 지각이 잦아 주말 아르바이트 비용의 대부분이 나와 그 녀석의 점심값으로 들어갔다. 일 정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중엔 나도 시간을 다스리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다.

카페에서는 경선식 영단어 공편토와 컴퓨터활용능력 1급 자격증 공부를 주로 했다. 특히 영단어 공부를 많이 했는데, 공편토 본 교재를 토대로 외우고 복 습용 암기장으로 복습하면서 자체 테스트까지 보는 것을 반복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계속해서 외우다보니 어느 정도 공부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한껏 오른 이 상황에서 화장실을 간다거나, 조금 쉰다거나 어쨌든 그 자리를 뜨게 되면 유지하고 있던 그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자세 그대로 할 수 있는 대로 시계도 보지 않고 공부했다. 그렇게 한 창 책을 보다가 이 정도면 정말 되었다 싶을 정도에 시간을 봤더니 대략 2시간 5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집중해본 것은 처음이었으며, 더 군다나 공부를 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진득하니 앉아있던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처음 느낀 날이었다.

3년이 훌쩍 넘어 다시 찾은 리치카페는 변한 것이 없었다. 아니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기억 속 나의 그 카페는 그대로였다. 이곳에서 새로운 건 지금 와서 느끼는 감회밖에 없다. 카페에 다시 와보니 새삼 느낀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발자취와 다짐들을 잊고 살았다. 동시에 현재의 소중함에 무뎌지기도 했다. 그래,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서 바로 이곳에서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을 보냈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 고, 감사하게도 이런 글들을 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때 그날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용우 stay@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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