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울고등법원에서 느닷없이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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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고등법원에서 느닷없이 생긴 일
  • 법률저널
  • 승인 2010.11.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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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변리사(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2010년 11월 4일 아침 10시 서울고등법원 서관 30호 법정에서는 5가지 사건의 재판결과가 선고될 예정이었습니다.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 재판부가 법정에 들어오고 재판장과 배석 판사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재판장이 첫 번째 사건번호와 당사자를 불렀지만 당사자는 양쪽 모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은 간단하게 결론만 선고했습니다. 재판장은 다음 사건으로 넘어갔습니다.

재판장이 “2010나33219호, 원고 ○○○씨, 피고 ○○○씨”라고 불렀습니다. “예, 원고 대리인 변리사 고영회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재판장은 “원고, 피고 불출석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민사 본안에서의 소송대리권 허용 여부에 대해 답변 드립니다. 형식은 판결문 일부로 넣었습니다. 고 변리사님께서 출석하셨으니까, 요지만 설명드리면, 변리사에게 민사본안 소송에서 소송대리권을 허용할지는 입법자의 결단 문제입니다. 변리사법 2조, 8조와 민사소송법 제87조 사이에서는 문리적(文理的)으로 해석할 수 없는 그런 면이 있어서, 입법자의 의사 등을 고려하여 현재의 변리사법으로는 민사본안에서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허용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고영회 변리사님의 소송대리 행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은 각하합니다.”하고는 법정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때, 방청석에 있던 어느 사람이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 내 사건을 선고하지 않고 그냥 나가면 어떡합니까?” 그러자 맨 뒤에 나가던 배석 판사 한 사람이 되돌아 나와 법원직원과 얘기를 나눕니다. 그러고 나서 법원직원이 “나머지 사건은 선고연기됐습니다. 선고연기서류는 나중에 보내겠습니다.”하고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이날 5개 사건을 선고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재판부는 2개를 선고하고 나머지 3개 사건이 남아 있는 줄도 모르고 퇴정하는데, 사건 당사자가 항의하는 바람에, 느닷없이 선고를 연기한다고 알리고 허둥지둥 법정을 빠져나간 것입니다. 재판을 진행하고 선고를 밥 먹듯 하는 판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선고할 사건이 있다는 것도 잊고 나가버리는 사태가 생겼을까요?

필자와 관련된 위 사건은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이 있느냐에 대해 법원의 결정이유를 밝히는 사건이어서 법률계의 관심이 쏠리던 사건이었습니다. 변리사법 2조에는 ‘법원에 대하여 하여야 할 사항의 대리’가 변리사의 업무로, 변리사법 8조에는 ‘변리사는 특허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명백한 규정을 두고도 법원은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해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국민이 이런 법조문을 읽고 변리사에게는 소송대리권이 없구나 하고 해석하겠습니까. 그동안 법원은 소송을 대리하려는 변리사에게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못하게 막아왔습니다. 막는 방법이 상당히 독특했죠.

서울고등법원 민사5부 재판부는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가 허용되는 것인지 여부가 문언상 명백하지 않다’하거나 ‘입법자 결단의 문제’라 하면서 끝내 소송대리권을 부인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칼을 휘두른 것이지요. 법률전문가이고 사회의 공정한 심판자라고 자처하는 법원으로서는 낯 뜨거운 이유를 붙였지요.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재판부가 허둥지둥 법정을 떠난 이유가 아닐까요?

칼을 가진 사람이 칼을 잘못 휘두르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억울하게 다칩니다. 법원이 사건의 실체를 잘못 판단하거나 정한 의도를 갖고 판단한다면, 그 사건의 주인공은 감당 못할 피해를 입습니다. 이런 일이 불거질 때마다 법원은, 잘못 판단할 수 있으니 재판은 3심제로 운영하는 것이다, 억울하면 항소해서 다툴 일이지 해당 판사를 공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변명도 해왔습니다.

이리 외쳐도 저리 외쳐도 진실이 외면될 때, 진실을 외면 당한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나는 석궁 사건의 진실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석궁을 날릴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그 사람의 심정이 진하게 다가옵니다. 재판부가 허둥지둥 재판정을 빠져 나가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본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에서 보내 주신 것입니다.

고영회(高永會) 변리사는
변리사, 기술사 / 대한기술사회장과 대한변리사회 공보이사 지냄 / 현재 행개련 과학기술위원장, 과실연 국민실천위원장,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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