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7)-“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한 명예훼손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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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7)-“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에 대한 명예훼손죄 판결
  • 신종범
  • 승인 2021.10.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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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얼마 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고 전 이사장은 2013년 1월 보수성향 시민단체의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제18대 대통령선거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하여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라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2년 만인 2017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제1심 법원은 “고 전 이사장의 자료나 진술 등을 보면 (당시 야당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모함하거나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믿어 온 체제의 유지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은 단순한 의견표명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구체화된 허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1심을 뒤집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동족상잔과 이념 갈등 등에 비춰 보면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이라며 “발언 내용의 중대성과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된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이념 갈등상황에 비춰보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제1심과 항소심이 엇갈린 판결을 내린 가운데 대법원은 “개인이 공산주의자인지 여부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고, 공산주의자로서의 객관적·구체적 징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 이상, 그 평가는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이를 증명 가능한 구체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개인적인 견해를 축약해 밝힌 것에 불과하고, 사실의 적시라 볼 수 없다”, “고 전 이사장의 발언 경위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면 공적 인물인 피해자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견교환과 논쟁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하며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고 전 이사장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고 전 이사장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개인적인 견해의 표명으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고, 공적 인물인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검증과정의 일환으로 표현의 자유 범위 내에 있다고 보았다.

명예훼손죄 관련하여서는 국민들의 알권리,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호하기 위하여 비범죄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정치인, 연예인 등 대중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에 대해서는 가급적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우리 법원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 또한 이러한 점을 고려한 판단으로 보여지고, 더욱이 대통령 후보에 대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이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광범위한 문제 제기가 허용되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 판단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에서 밝히고 있는 몇 가지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번 판결은 공산주의자가 객관적·구체적 징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평가는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이를 증명 가능한 구체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우며, 누군가를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시장경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징표가 존재한다. 이러한 공산주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헌법에 반하는 반헌법적인 이념이다. 더욱이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일반적 개념과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갖고 있는 특수성을 공안검사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고 전 이사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한 표현에 대하여 대법원이 명예를 훼손할만한 사실 적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고 전 이사장이 했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는 발언은 “문재인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북한과 같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이러한 표현이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자로 국민들에게 선택을 받고자 하는 정치인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사실 적시가 아닌지 의문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어 감옥에 보낸 일이 부지기수였고, 지금까지도 정적(政敵)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올가미를 씌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무척 많았다. 고인이 된 전 김대중 대통령은 일생을 독재자가 놓은 공산주의자라는 덫에서 헤어나오려 몸부림쳐야만 했고, 아직까지도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국민을 현혹시키는 무책임하고 근거없는 표현에 대한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 표현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상대방에 대한 것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신종범 변호사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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