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변호사의 형사교실]살인의 기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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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변호사의 형사교실]살인의 기억3
  • 법률저널
  • 승인 2010.11.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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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현 변호사, 법무법인 세인
  

아무런 전과가 없는 30세의 직장인이 술에 취해 귀가하던 중 우연히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고 이후 살인죄로 재판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지난호에 이어

(5) 피해자의 사체 옆에 피고인의 안경이 떨어져 있었는 바, 피고인이 사건 당일 피해자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시도하던 중 별일 없이 피해자의 집에서 나왔을 뿐이라면 당시 피고인이 안경을 그대로 둔 채 황급히 피해자의 집에서 나온 정황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아니한다. 이와 관련하여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당시 안경을 잘 착용하지 않았고, 안경을 착용하지 않더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현재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나 평소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관과 행동양식에 비추어 피고인의 위 진술은 선뜻 믿기 어렵다.

(6) 피해자의 유두에서 검출된 남성의 DNA와 피고인의 DNA가 일치하는 반면 피해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남성 18명에 대한 유전자감정 결과 피해자의 신체에서 검출된 남성의 DNA와 일치하는 DNA가 없었다.

(7) 경찰은 이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분석하여 피해자와 통화한 내역이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진행하였으나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이 피고인의 검찰 및 법정에서의 각 진술, 피해자의 통화내역, 사체 발견 당시 피해자의 모습, DNA 감정 결과, 경찰 수사단계에서 피고인 아닌 제3자에 의한 살해가능성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진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피고인이 아닌 제3자에 의하여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추상적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에 불과한 것으로서 합리적인 의심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던 중 피해자를 폭행하고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하였다.

살인의 범의가 피고인에게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
 
1심 재판부는 (1) 피해자가 손졸림에 의한 목눌림 질식을 원인으로 사망하였고, (2) 피고인은 검찰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입술을 깨물자 피해자를 떼어내기 위하여 양손을 허우적 거리다가 피해자의 얼굴을 때리게 된 것 같고, 계속해서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목을 조른 시간에 대하여 제1회 피의자신문시에는 ‘꽤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라고, 제3회 피의자신문시에는 ‘잘 모르겠지만 약 3분 정도였던 것 같다’라고 각 진술). 피해자가 피고인의 입술을 물고 있는 것을 풀어주었고, 이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누르고 있던 손을 푸는 순간 피해자가 ‘꺼억’하는 소리를 냈다. 그 후 피고인은 무서워서 피해자의 집을 도망쳐 나왔다.”라고 범행 당시의 경위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고, (3) 피해자의 사체에 대한 외피검사 결과 왼눈 부위 가쪽과 왼광대 부위에서 피부밑 출혈이 발견되었고, 턱끝밑삼각 왼쪽에서 두 곳, 왼턱밑삼각, 왼턱뼈각 부근에서 피부까짐, 오른턱뼈각 부근에서 피부밑출혈, 앞목삼각에서 세 곳의 가로방향 피부까짐, 오른빗장 부위에서 두 곳의 피부까짐이 있는 것으로 검사되었고, 내부검사 결과 오른목빗근에 근육속출혈이 있고, 왼빗장뼈 위쪽 부근의 목동맥신경집에서 국소적인 출혈이 있는 것으로 검사되었는데, 이와 같이 피해자의 왼쪽 턱 부분과 목 부분에 상처가 집중되어 있는 것은 통상 목을 조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상처의 정도로 보아 손으로 강한 압박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4) 피고인은 피해자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피해자로부터 ‘꺼억’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도 당시 피해자를 구호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피해자의 집에서 나왔고, (5)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시도하던 중 아무일 없이 그대로 피해자의 집에서 빠져나온 것뿐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은 자신의 안경을 다시 착용하고 나오는 것이 상식적인데, 그럼에도 피고인은 사건 당일 피해자의 방안에 자신의 안경을 놓아둔 채 황급히 피해자의 집에서 빠져나왔는 바, 이는 당시 모종의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였음을 추단케 한다고 보았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시도하던 중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자극케 하는 말을 하면서 피고인의 입술을 깨물자 피해자의 얼굴 부위를 폭행하고, 그럼에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자 순간적으로 양손으로 피해자의 목 부위를 상당 기간 강하게 눌러 피해자로 하여금 손졸림에 의한 목눌림 질식으로 사망하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살인의 범의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선고 내용과 피고인의 기억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유죄가 인정된다고 한 후에 피고인이 초범이고 다소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점 등은 정상에 참작할 만하지만 피고인이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던 중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자극케 하는 말을 하고 피고인의 입술을 깨물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죄질이 상당히 무겁고,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생명을 잃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하였으며 피해자의 유족들 또한 회복할 수 없는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음에도 피고인은 아직까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슬픔을 덜어줄 만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고 재판 진행 내내 진정으로 피해자의 명복을 빌거나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 피고인에게 그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무죄까지 기대하였던 피고인과 피고인의 가족들이 절망하였음은 물론이다. 1심 판결은 무엇보다도 피고인이 변호인을 선임하고 1개월이나 더 지난 후에 작성한 문답서에서도 피해자의 목을 누른 사실을 인정한 점에 비추어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조른 사실이 맞는 것으로 보이고 사체발견 당시와 피고인이 피해자의 집을 나갈 때의 상황에 변화가 없어 피고인 외에 제3자의 관여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였기에 피고인을 범인으로 확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이후 1심 재판장은 위 사건으로 정말 많은 고민을 하였다고 하면서 국민참여재판을 하였다면 결론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조심스레 보이기도 하였다. 마침 앞으로 살인죄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참여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심 선고 후에 피고인을 2회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피고인 스스로도 당시 소주를 3병 넘게 마셨기에 너무나 취하였고 피해자와의 성관계 도중에 당황하여 피해자의 목을 누른 사실에 대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재차 물었지만 똑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피고인에게 항소심에서 자백을 하고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였다.

피고인이 정말 기억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피해자의 목을 누른 기억을 그냥 거부하고 싶었을까. 피고인과 피해자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피해자는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고 상소심의 결과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가정과 직장이 있는 피고인의 인생은 이미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었고 피고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은 없어보였다. <끝>

이창현 변호사는...
연세대 법대 졸업, 법학박사
수원지검 검사, 이용호 사건 특검팀 특별수사관
아주대 법대 부교수, 연세대, 법무연수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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