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연금개혁 공론조사 : 세대 간 갈등과 공론화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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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연금개혁 공론조사 : 세대 간 갈등과 공론화의 문제점
  • 신희섭
  • 승인 2024.04.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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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2024년 4월 31일 연금개혁과 관련한 500인 회의가 숙의 과정을 마치고 최종 연금개혁안을 선택했다. 현재 소득의 9%를 내고 연금으로 현 소득의 40%를 받는 방안보다 13%를 내고 50%를 받는 방안(소득보장 안)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공론화 회의 결과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 국민연금개혁에 이번 공론조사가 어느 정도로 반영되고 조정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공론조사에서 시민들의 56%가 재정안정방안(제안된 2번 안)보다는 소득보장(제안된 1번 안)을 선택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뇌관 근처를 찔렀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지지를 보내고 의회 입법을 촉구했다. 보수 진영의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미래 세대에 폭탄을 떠넘긴다며 비판했다. 극단적으로는 심의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며, 재투표를 요구하기도 한다.

연금개혁. 어려운 주제다. 한쪽만 맞고 다른 쪽이 타당하지 않다면 논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양쪽이 타당할 때 골치 아픈 것이다. 게다가 생존이 걸린 문제다. 한국 노년층의 빈곤과 자살률을 고려하면 노후 소득보장이 중요하다. 반면 출산율 0.6명 시대를 사는 상황에서 출산지원과 주거안정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 한국은 재원이 부족하다.

‘정치’적으로는 이번 사안은 세대 간 갈등을 강화할 것이다. 만약 소득보장 안대로 가고 2060년 무렵 연금이 고갈되어 국민연금을 모아둔 기금이 아닌 당시 내는 보험료로만 충당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미래 세대는 연금폭탄을 맞는다. 계산상으로 현재 2015년생이 46살이 되면 보험료로 소득의 35.6%를 내야 한다. 더 극단적인 경우는 43%까지 낼 수도 있다. 여기에 의료 보험료(현재 7%)와 세금(평균 세율 18.3%)을 계산하면 소득의 70%를 국가에 내야 한다. 이런 주장을 반대하는 측은, 이 결과 계산이 과장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인구 구조에서 1960년대생과 1970년대 생들까지 모두 은퇴한다고 가정해보라. 이 시기 태어난 2천만 명 가까운 이들이 은퇴하고 연금을 받는다. 문제는 2010년대 이후 한 해 40만에서 20만 명 정도 태어난 세대들이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 평균 30만 명으로 잡고 30살부터 60살까지 30년 동안 노동자를 다 더해도 900만 명이 안 되는 이들이 기금을 넣어야 한다. 이 기금을 2천만이 넘는 이들이 가져간다. 한국에서 제2의 석유가 나오지 않고, 5차와 6차 산업혁명을 한국이 석권하지 않는다고 하면 결과는 너무 명확하다. 기금은 고갈될 것이다. 국민연금을 노동시장에서 나온 돈으로 줘야 하면 그 시점 노동자는 감당 불가다. 뭐 중간에 기금운용 수익을 고려해도 인구 과반이 넘는 초고령사회 부양이 가능할까!

‘정치학’적으로 이번 사안은 심의 혹은 숙의민주주의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심의 혹은 숙의민주주의는 ‘심의(deliberation)’라는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서 시민들이 민주적 결정을 한다면 그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들을 믿기 어렵고, 공동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이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서 정보량을 늘린 뒤 결정한다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당’한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심의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이론으로 1970년대 이후 부상했다. 하버마스와 롤즈 같은 이론가들뿐 아니라 공화주의에서도 심의라는 이론자원을 활용해서 사회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데 심의민주주의는 몇 가지 점에서 약점을 보인다.

심의와 숙의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정보와 많은 양의 정보가 필요하다. 전문가들도 지난 30년 이상을 싸워온 주제를 한두 달 동안의 학습과 토의를 거쳐 평범한 시민들이 타당한 정책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잘못하면 심의과정은 그저 명분이고, 특정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번 공론화에 참석한 분의 칼럼에서는 시민들이 학습할 정보가 너무 늦게 제공돼서 숙의 과정 전에 정보전달이 충분치 않았다고 한다. 또 정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보다 더 문제는 제시된 방안이 방안으로서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원칙을 “내는 만큼 받는다”로 정하면, 내는 액수를 현실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표가 날아간다. 아니면 주는 액수를 낸 만큼으로 맞춘다. 이번엔 노인층의 표가 날아간다. 이쪽저쪽 다 고려하고 만들어진 대안들이 과연 논의의 시작점인 ‘재정 안전’을 유지하는 ‘지속 가능한 연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이기적이다. 당연하다. 그러니 참여자들이 자신의 소득을 지키겠다고 내린 결정을 비난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심의민주주의 이론가들은 ‘공적 이성’과 ‘성찰적 이성’과 같은 이상적인 개념을 통해 심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이익도 고려한다고 가정한다. 인간이 가진 ‘부분적 이타성’과 ‘장단기 이익의 구분 가능성’을 살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마주한 현실과 비교하면, 이론의 가정이 틀렸거나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미래가 어두운 상황에서 누가 다른 사람을 고려하겠는가! 정치학적 가정의 위기이자 정치적 위기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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