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베니스의 상인과 이·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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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베니스의 상인과 이·팔전쟁
  • 박상흠
  • 승인 2024.04.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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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채무를 변제하지 않은 안토니오에게 그의 살 한 파운드를 요구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잔인한 그는 기독교 사회에서 이방인이다. 베니스인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선박업자 안토니오. 그는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자신의 살 한 파운드를 담보로 주는 휴머니스트인 동시에 돈을 빌릴 때조차 샤일록을 경멸하는 두 얼굴의 사람이다.

샤일록은 말한다. “나리는 나를 이단자, 사람 죽이는 개라 부르고 뱉었소.” 이에 안토니오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나는 앞으로도 당신을 그렇게 부를 것이며... 당신이 돈을 빌려주더라도.” 그들 둘은 상대방의 생활방식과 종교를 증오하고 적대적인 관계를 이룬다. 샤일록의 복수심과 안토니오의 꺼지지 않는 유대인 혐오증은 소설 속의 쌍둥이가 된다.

극 중 샤일록이 내뱉은 대사 중 안토니오 때문에 겪은 소외감을 들어보자. “안토니오는 나를 모욕했고 그가 방해해 나는 오십만 더커트나 잃었고 나의 손실을 조롱했으며 우리 민족을 멸시했소.” 샤일록은 복수하고 싶었다. 법정에서 원금의 몇 배로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버사니오의 제안에도 그는 오직 안토니오의 인육 한 파운드만을 고집한다. 그러나 그가 법정에서 원했던 점은 안토니오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였다. 개가 아닌 사람 취급을 원했다.

“살 한 파운드를 가져가시오. 정확하게 1파운드를. 하지만 살을 자를 때 흘리는 피 한 방울은, 그대의 토지와 전 재산은 베니스 국법에 따라 베니스정부에 몰수될 것이오.” 포셔의 판결에 따라 샤일록이 요구한 3천 더컷과 인육은 포기된다.

셰익스피어는 소설을 통해 겉으로는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베니스 사회가 그들에게 행한 편견을 비판하려고 했다. <베니스 상인>은 인종 편견과 종교충돌로 얼룩진 지구촌에 다시 읽혀야 할 소설이다. 샤일록의 계약서에 요구한 인육은 부당한가. 현행 민법상 반사회질서로 위배 되는 계약은 베니스의 법률 ‘로마 십이동표’에서는 허용된 내용이었다. 소송의 근원은 유대인을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베니스 사회의 인종 편견과 배타성에 있다.

안토니오의 살을 겨눈 샤일록의 칼이 조문의 문구에 집착하는 형식적 법률의 대변자라면 포샤의 명판결문은 실질적 정의에 기반한 자비법의 대표자로 볼 수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게 된다면 인류는 모두 장님이 될 것이다. 문명의 충돌 속에 갈등의 극한에까지 달려가고 있는 지구촌에 필요한 것은 샤일록의 칼이 아닌 포셔의 자비법이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이스라엘이 자행하고 있는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격은 인육을 도려내는 듯한 샤일록의 날카로운 칼을 보이는 듯하다. 하마스 단체의 테러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테러단체가 아닌 민간인을 향해 불을 뿜어내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국제법을 붕괴시키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인육 한 파운드를 고집하는 샤일록의 변론에, 피 한 방울에 전 재산 몰수를 판결한 포셔의 판결문을 반영한다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을 향한 인종 차별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베니스 상인은 이스라엘의 인질과 팔레스타인 인질의 맞교환이란 현실적 해결을 배제한 채 ‘인육 한 파운드’의 판결을 고집하는 이스라엘의 정책에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의 인종편견이 샤일록의 칼을 날카롭게 만들었다면, 이·팔 전쟁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인종편견이 팔레스타인의 불을 뿜게 만든 측면도 있다는 점을 되돌아본다면, 인종편견의 가해자인 이스라엘이 피해자인 팔레스타인을 향해 칼을 든다는 것은 더욱 정당성을 떨어뜨리는 행동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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