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저널=김주미 기자] 달력을 보니 다가오는 21일 밑에 ‘경찰의 날’이라 적혀있다. 여중생이던 3년의 기간 내내 기자의 꿈 역시 경찰이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경찰대학 진학의 꿈을 마음에 품고, 그 외의 선택지는 단 한 순간도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교생이 된 후 치른 첫 모의고사에서 경찰대 진학이 가능한 성적권이 나와준 이후로 줄곧 점수가 하향일로를 보이는 바람에 그렇게 경찰의 꿈은 멀어져 갔다.
오랜 기간 품어왔던 꿈을 애써 지우느라 고민이 깊었던 당시 기자에게 애초부터 경찰의 꿈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친척 한분이 던진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열심히 해서 경찰되어 봐야 검사가 하라는대로 하는거야”
현직 경찰에게는 얼핏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발언은 단지 근거없는 비난이나 폄하가 아닌,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이야기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수사의 지휘권은 검찰에게 있기에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개시한다고 하더라도 수사의 운명은 검찰 손에 달려있다.
톡 까놓고 이야기해 1980년, 경찰의 초급 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경찰대학이 설립되기 이전까지 검찰과 경찰의 구성원은 수뇌부를 제외하면 분명히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합격한 엘리트들로 구성된 검찰에서 경찰의 수사를 전반적으로 감독하고 지휘하는 것에 토를 달만한 경찰 구성원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성적으로 최상위권에 해당해야 갈 수 있는 경찰대학을 진학한 인재들이 자신보다 낮은 성적권에 있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된 고교 선후배의 수사지휘를 받게 되는 사례가 제법 축적되자 그들의 볼멘소리가 모이기 시작한 것 같다.
경찰 수사권 독립 주장의 발로는 검찰의 부패나 친권력화, 수사상 효율성 문제이기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뿌리깊은 경찰의 ‘불편한 심기’일 수 있는 것이다.
어찌됐건 이렇게 등장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논의는 15대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처음 공론화가 시작된다.
이후 16대 노무현 대통령 역시 경찰 수사권 독립을 대선공약으로 세우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는데, 당시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삭제하고 경찰과 검찰을 대등한 수사의 주체이자 상호 협력관계임을 인정하는 조정안까지 마련해 당론으로 채택하려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논의들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한 사건이 생긴 바, 2005년 11월 여의도 농민 시위 때 진압경찰들에 의해 부상을 당한 시위자 두 명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잇달아 사망한 사건이다.
이같은 경찰의 과오는 ‘경찰은 수사권이라는 칼을 쥐어줘선 안되는 조직’이란 인식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당시 경찰청장이 경질됨과 동시에 수사권 독립의 논의는 불씨가 완전히 꺼져버렸다.
10여년 전 경찰 수사권 독립 논의를 일거에 날려버린 것과 꼭 같은 사건을 우리 사회는 얼마 전 또 겪었다.
각 구성원의 자기검증과 철학을 무시한 채 맹목적인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경찰 조직이 같은 생리를 가진 검찰 조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은, 대민접촉의 면이 넓은 업무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구부러진 칼끝이 정치적으로 오남용되는 것이 문제라면, 경찰의 구부러진 칼끝은 언제나 평범한 서민에게 휘둘러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수사권 독립이 언젠가는 경찰 품에 안겨질 성질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검찰의 부패보다 경찰의 부패를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이 서민의 입장임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인식 전환의 노력과 신뢰 제고의 길에 경찰조직이 더 힘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국민의 봉사자로서 질서와 공의를 수호하는 깨끗한 경찰이 되고자 하루하루 정진하는 수많은 예비 경찰관들이 현직이 됐을 때엔, 그 이상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돼 있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