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이은경의 Heal the World- 법조인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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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 JUSTICE] 이은경의 Heal the World- 법조인의 선물
  • 이은경
  • 승인 2018.06.2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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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변호사
법무법인 산지 대표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잔인한 형벌이 ‘판단’이라 하던가. 그렇다면, 법조인은 가장 큰 고역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허구한 날 판단하는 우리에게 도대체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아마도 ‘판단’이란 말은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걸 일컫는 듯하다. 심판은 자고로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섣부르게 판단하고 비판하다간, 자칫 신의 자리를 넘보는 ‘오만’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사실 옳고 그름의 현명한 판단은 이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이로움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판단이란 게 ‘오만한 자리’로 넘어오면, 가장 큰 죄악을 낳기도 하는 법이다.

특히 법조인이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분명히 해두어도 좋겠다. 먼저, 우리 중 그 누구도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전부 다 알 순 없다. 사건의 전모를 유리구슬 보듯이 들여다 볼 수도 없고, 남의 전 인격을 속속들이 알 수도 없다. 자라온 배경과 환경,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내 기준으로 너무 쉽게 판단해 버리진 않았는지 늘 되짚어야 한다. 더욱이 타인의 행동 이면에 있는 동기를 악하게 규정하고 함부로 비판하는 건 절대 금물이다.

다음으로, 우리 중 어느 누구라도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데 철두철미하게 공평할 순 없다는 거다. 우리의 판단은 불완전한 정보에 근거하기도 하고, 직감적, 비논리적 반응에 기인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실은 요즈음 즉흥적, 감성적 비판이 판을 치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 터무니없는 논평과 비평, 감성에 휘둘린 가짜뉴스들이 아무 여과장치 없이 마구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더욱 우려스러운 건, 조급한 판단이 부르는 ‘대중의 분노’란 게 무지, 오해, 편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든 걸 알 수도 없으려니와, 상황을 잘못 인식하기도 하고, 때론, 가치관이 편향적일 수도 있다. 온전히 공정한 성품을 지닌 사람만이 공평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온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거다.

특히 법조인이라면, 다양한 판단이 가능한 사안을 자신의 선입견에 터 잡아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건 극히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 기준이라 생각하고 타인의 생각을 쉽게 무시하는 건, 법조인이 제일 멀리 해야 할, 지극히 거만한 태도다. ‘나는 절대 틀릴 수 없다’는 건 절대 거짓이고,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게 참 진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할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건 아무도 남을 비판할 만큼 선하지 않다는 거다. 내 눈의 들보를 빼내야 타인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다. 그래서 위선이 제일 문제다. 타인은 진리의 칼날로 판단하면서 나에겐 칼집을 씌우는 게 바로 위선이 아니던가. 나는 로맨스, 남은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 말이다.

결국 법조인은 ‘판단’이란 숙명을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게 바로 우리의 직업, 우리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통찰력을 키우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고, 전문적인 지식도 부지런히 쌓아야 한다. 허나 법조인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바로 ‘겸손’이리라. 모든 걸 알 순 없다는 대전제를 단단히 붙들고, 공정하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온전하지는 않다는 자성과 우리 스스로도 선하지 않다는 진솔함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겠다.

법조인이 내린 판단에 승복하는 이유가 단지 공권력 때문이라면, 이 사회는 승자독식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을 거다. 그러나 그 승복의 이유가 심판자의 뼈를 깎는 노력과 겸손한 태도 때문이라면, 이 사회는 사랑과 공의의 선순환으로 바뀔 수도 있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심판대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완전한 신이 아니라, 심판대에서 세상을 올려다보는 겸손한 인간이 아닐까? 절대로 신이 될 수 없기에 숙명처럼 여겨지는 판단이란 고통도,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지극한 겸손을 통해 진정한 보람으로 변하지 않을까? 부디 ‘판단’이란 게 신의 형벌이 아니라, 신의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이 땅의 법조인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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