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LAW & JUSTICE] 작가 정재민의 고독한 독서록-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기사승인 2018.12.06  21:59:59

공유
default_news_ad1
   











정재민 작가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 코너는 이달까지만 연재됩니다 ※

(고독한독서록 : 여기서 ‘고독’은 중의적이다. 孤讀과 苦讀. 인기 없는 책을 홀로 읽겠다는 뜻과 깜냥에 버거운 책도 읽어보겠다는 뜻이 있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 박생강


하늘의 파랑색과 집의 빨강색과 길의 노랑색이 선명하게 대조되는 화가 안소현의 작품 「햇빛에 담긴 날」을 그대로 가져온 아름다운 책 표지. 그 등짝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런 날이 있다. 집과 회사가 아닌 어딘가에 하룻밤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여행 가방처럼 처박히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겐들 이런 순간이 없겠는가. 그럴 때 나는 혼자 절에 가서 자고 온 적도 있고, 대학생 때에는 친한 친구의 자취방에서 어딘가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요즈음에는 피톤치드가 물씬 나오는 숲속 통나무집에 혼자 머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박생강 작가의 소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의 주인공 영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때 그곳, 이태원 에어비앤비에 간다.”

회사 재무팀에 일하는 영훈은 심신이 지친 어느 날 이태원의 ‘에어비앤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아직 헤어진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일로 토라져서 헤어질 수도 있는 상태인 여자 친구 희수와 얼마 전 하루를 묵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희수가 좋아하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꽂힌 작은 서재도 있다. 영훈은 에어비앤비에서 홀로 잠을 청하려 하는데 별안간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이자 해커인 ‘운’이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면서 영훈과 운이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서 평범한 직장을 다니면서 평범한 연애를 하는 ‘영훈’과 고아로 자라서 고모 밑에서 착취당하다가 중국으로 넘어가 해커가 된 ‘운’의 삶 사이에는 접점이 그리 많지 않다. 굳이 찾자면 영훈의 아버지는 나이지리아 해커가 벌이는 ‘로맨스스캠’인지도 모르고 페이스북 속의 외국의 미녀와 사랑에 빠져서 돈 5백만 원을 갖다 바치려고 하는데 ‘운’은 그런 나이지리아인들을 이태원에서 수없이 목격하는, 그들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헤커라는 정도. 그럼에도 두 사람의 우연한 동거가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큰 틀에서 볼 때 인간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다 거기서 거기까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강력한 욕망이나 삶의 목표를 보여주지 않는다. 영훈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그를 두고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영훈 본인은 약간의 독서와 남들의 ‘뻘짓’을 보며 몰래 즐거워하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영훈의 여자 친구 희수는 사랑이 자신의 일이나 연봉보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레몬즙이나 바질 같이 그것이 없으면 나머지가 너무 부질없어 보인다고 한다. 반면 “편의점에서는 푼돈을 벌고, 집에는 햇볕이 들지 않고, 가족들은 모두 서로를 원망하는” ‘운’의 여자친구는 오로지 ‘운’을 사랑하는 재미로 살아간다. ‘운’은 삐뚤삐뚤한 그녀의 치아를 교정해주기 위해 돈을 벌며, 삶에서 “로그인보다 로그아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재미로 사는가. 나는 삶이 근본적으로 허무와 부질없음을 벗어날 수 없지만 삶과 일상과 주변 인물들 사이사이에 레몬즙과 바질 조각들이 산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비록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는 변화를 모색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조금씩 더 깊이 교제하고, 때로는 혼자 놀고, 또 때로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무엇인가를 함께 도모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거리를 걷고, 음악을 듣고, 자전거를 타고, 햇볕을 쬐는 그 모든 일들이 레몬즙과 바질 조각처럼 삶의 허무로 인한 막막함과 두려움을 덜어준다.

작가 박생강은 ‘작가의 말’에서 “언젠가부터 소설가가 직업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혹은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읽고 보니 나도 언젠가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나도 모르게 보편적인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거나 특별한 일에서 보편적인 삶의 원리를 찾게 되었다. 장시간에 걸쳐 벌어진 일들을 한 마디의 평가로 눙쳐버리거나, 반대로 순식간에 벌어진 하나의 일을 슬로우비디오를 재생시키듯 되새김질한다. 그런 태도와 방식이 레몬즙과 바질 조각처럼 삶을 살만하게 한다.

정재민 desk@lec.co.kr

<저작권자 © 법률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26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