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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15)-형사조정위원 사용설명서

기사승인 2018.12.06  10: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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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살다 보면 아찔한 순간들이 있지요. 살면서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순간, 피할 수만 있다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순간들이요.

성경에도 보면, 예수가 잡혀가기 전날 밤새도록 했던 기도 중에 “제발 피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읍소한 대목이 나옵니다.

아무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그것, 고소․고발을 당하고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는 것.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생각만 해도 아찔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애를 쓰며 한 달 한 달 이리 메꾸고 저리 메꾸다 드디어 어느 날 부도가 나고, 결국 채권자들이 고소를 하고 근로자들이 진정을 내면서 수사기관에서 출석요구서가 날라 온 걸 받아드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리지요.

술 먹다 시비가 붙어 멱살이 잡히고 실컷 맞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딱 한번 주먹을 날렸는데, 아뿔싸! 상대가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집니다. 눈뼈 코뼈 다 나가고 수술비며 치료비가 엄청나게 든다는 얘기를 듣고 물어 줄 돈 걱정하고 있는 와중에, 경찰에서 조사받으러 나오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고 혀가 바짝 마르지요.

공유사이트에 파일을 올렸는데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당했다거나, 인터넷에서 댓글 논쟁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험한 말을 몇 줄 썼는데 명예훼손, 모욕으로 고소당했다거나, 사귀는 사이에 헤어지네 마네 싸우다가 술 먹고 함께 모텔까지 가게 돼서 자기 딴에는 잘 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간죄로 고소당했다면서 조사받으러 오라는 등, 경찰서에서 갑자기 연락이 오거나 출석요구서가 날라 오면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앞이 아득하니 아찔해 질 겁니다.

한편 그와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 비단 고소당한 사람뿐 만일까요?

사실 술 먹고 잘 푼 줄로만 알았다가 강간죄로 고소당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기억과 스토리가 상대방에게서 발견되는 경우, 종종 있지요. 피해자 입장에서는 헤어지자는 의사를 여러 번 밝혔음에도, 귓등으로 듣더니 싫다는 데도 술자리에 끌고 다니다 강제로 모텔까지 데려가 결국 힘으로 눌러 성관계까지 한 애인. 고심 끝에 고소장을 내긴 했지만, 다시 꺼내기 싫은 끔찍한 기억을 수사와 재판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해야 하는 괴로움을 피하고 싶기는 피해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힘이나 말로 가해를 당하든, 또는 생각지 않게 뒤통수 맞듯이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돈을 뺏기거나 날리거나 어떤 형태로든 재산상 피해를 입게 되는 것, 하다 못 해 교통사고를 당하든, 크든 작든, 가볍든 심각하든, 범죄피해를 당하는 일 같은 건, 누구라도 결코 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일 겁니다.

2.
고소를 당하거나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는 것,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고통을 당하는 것, 양자 모두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고, 피의자든 피해자든 경찰서나 검찰청은 피하고 싶고 안 가고 싶은 곳일 텐데요.

어찌 보면 그렇게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생각지 않게 만나는 귀인 같은 존재가 바로 형사조정위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에? 변호사라면 모를까, 형사조정위원이요?!

여러분들 중에 몇몇은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맞습니다. 형사조정위원이 바로 사지(死地)에서 만나는 귀인일 수 있어요.

피해자에게 형사조정위원은 범죄로 인해 받은 직접적인 피해 결과뿐 아니라, 그로 인해 입은 간접적인 피해, 2차적인 피해, 후속적으로 따르게 된 피해들에 대해서까지 잘 들어 주고 잘 보아 주며, 무엇보다도 범죄피해로 인해 얼마나 힘들고 괴롭고 놀라고 화나고 슬프고 무섭고 고통스러운지 등등 그 마음을 잘 알아 줄 겁니다.

그리고 형사조정위원은 피해 회복을 위해 피해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들어 주고, 때론 극심한 분노 때문에 비합리적인 요구를 할 때조차도 그 마음을 잘 이해해 주면서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합리적 상황 파악 및 의사결정의 길로 안내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범죄의 피해로 인한 결과와 고통에 가해자를 직면시켜 주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 미안한 마음과 책임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피해회복이 신속하고도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형사조정에 회부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노나 두려움, 실망감으로 지레 “난 합의 따위는 안 하겠어!”라고 무조건 형사조정을 거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형사조정위원에게 내가 입은 피해, 현재의 심경,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마음을 잘 정리해 가서, 조단조단 잘 이야기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형사조정이 다짜고짜 합의를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요.

조정의 결과로 합의에 이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의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가치롭고 이익이 될 뿐 아니라, 형사조정위원에게 범죄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 자체가 때론 피해의 치유에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요.

한편 형사조정위원은 피의자가 된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잘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범죄에 이르게 된 경위라든가 그 나름의 사정, 그리고 억울함을 들어 줍니다. 피의자 입장에서 수사기관은 단지 범죄행위 입증을 위해 일방적으로 취조를 하는 두려운 권력기관일 수 있겠지만, 검찰청에서 만나는 형사조정위원은 피의자의 입장에서의 억울한 사정에도 공감적으로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피의자의 입장과 형편에서 어떻게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에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주고 피해자와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 줄 수 있지요. 진정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달해 줄 수도 있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받고 싶다는,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고 피해를 회복해 주고 싶다는 진심을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형사조정위원일 겁니다.

피의자 입장에서도 형사조정을 무조건 회피하려 하거나 또는 방어적, 일시모면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용기와 진솔한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형사조정위원의 도움을 얻으며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 보는 것이 형사피의자가 된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
여러분은 어떠세요?

원치 않게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고소를 당했든 피해를 당했든,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검찰청에 불려가게 되었을 때, 범죄 수사나 피해 조사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 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마음이 놓이고 안심이 되겠죠?

게다가 어려운 상대와의 엉키기 십상인 대화를 잘 연결해서 형사적 갈등과 분쟁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럽겠습니까. 정말 귀인이 따로 없겠지요.

물론 위에 그린 형사조정위원의 모습은 아주 이상적인 그림입니다. 2010년도에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형사조정제도가 들어 와, 형사절차의 검찰 단계에서 형사조정을 실시하게 된지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지금, 그 담당 주체인 형사조정위원들의 역량과 자질이 국민들의 눈에 찰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형사조정은 해 마다 증가하고 있어서 형사조정의뢰건수가 2011년도에 2만 건도 채 안 되었던 것이 2016년도에는 11만 건을 넘어섰고 2017년도에는 118,113건으로 집계되었으며, 2018년에는 6월까지 65,838건이었으므로(통계는 대검찰청 발간 <2018년 전국 형사조정위원 전문교육 자료집> 12면에서 인용), 아마 올해는 12만 건이 넘어서지 않을까 추측해 보는데요.

우리나라 검찰은 위와 같이 형사조정제도를 양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물론, 그 질적 개선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 오고 있는데, 그 핵심에 바로 형사조정위원들에 대한 교육과 트레이닝의 강화가 있습니다.

즉 형사조정위원회는 각 지검, 지청 단위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각 지검, 지청 단위에서의 꾸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그 뿐 아니라 대검찰청 차원에서도 2008년 이후 매년 형사조정위원들에 대한 전문화교육을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2014년도에 그 체계적 훈련 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 자료로 <형사조정의 이론과 실무>(대검찰청)라는 책이 출간되어 올해는 벌써 증보판이 나왔고, 올해 역시 서울, 대전, 광주, 대구, 부산, 고검 단위에서 전국 형사조정위원 전문화교육을 마쳤습니다.

그동안 지역에 따라서는 개별적인 형사조정위원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형사조정이 잘 진행되어 오기도 했지만 부족한 부분도 적지 않았는데, 점차 문제점이 개선되고 전국적, 체계적으로 형사조정위원들의 자질과 역량이 향상되어 가면서 형사조정제도가 회복적 사법 이념에 제대로 뿌리를 둔 제도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물론 그 이익이 결국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은 자명하구요.

4.
아쉬운 것은, 형사조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예산은 늘 부족한데다 그마저도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형사조정의 근거법률이 범죄피해자 보호법이다 보니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다 형사조정 예산을 편성하고 있습니다만, 늘어나는 수요를 다 메우지 못하고 2017년도에는 범죄피해자 치료비 중 불용예산에서 끌어왔고 2016년에도 범죄피해자 치료, 자립지원, 신변보호강화 사업 예산에서 끌어오는 등 부족분을 메워오고 있는데,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말 그대로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직, 간접 용도에 우선 사용됨이 바람직합니다.

형사조정 예산은 중장기적으로는 법무부 일반회계 예산으로 편성하되, 형사조정제도가 우리나라 형사사법 시스템에 있어서 명실상부한 기본적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이 지원되어야 할 것입니다.

형사조정위원이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처럼 진짜 귀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 분들이 양질의 교육과 트레이닝을 받고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투여하실 수 있도록 보수를 적정화하는 등에 필요한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었으면 합니다.

자, 그동안 검찰 단계의 형사조정제도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았는데요. 여러분, 이제는 법원 단계의 회복적 사법에 대해서 다음 차례로 이야기 해 볼까요.

임수희 sooheelim2017@gmail.com

<저작권자 © 법률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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